[양일국의 컬처&트렌드] 주한미군과 신중현·조용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으로 3일 만에 서울을 뺏긴 우리 군이 여세를 몰아 북진하며 38선을 넘은 날을 기념한 것이다. 직전, 미국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힘을 실어준 공이 컸다.
1953년 이 날,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면서 향후 70년 안보와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세계 최강대국과 패망 직전에서 회생한 나라가 대등한 입장에서 어려울 때 서로 돕기로 한 기상천외한 조약이다.
미군의 주둔은 얼어붙은 동토(凍土)에 가장 뜨거운 대중문화를 이식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으로 배치돼 졸지에 놀거리를 잃은 젊은 군인들을 위해 미국은 1957년 AFKN TV(현 AFN)를 개국, 미국 전역의 볼 만한 드라마와 영화·토크쇼 등을 엄선해 송출했다. ‘심슨가족’ ‘스타트랙’ ‘WWF 프로레슬링’에 이르기까지 AFKN은 미지 세계의 신문물을 전해주는 친구였다.
미군들을 위한 밴드와 가수도 필요했다. 미8군 무대는 길옥윤·패티김·윤복희 같은 전설의 음악인들을 키워낸 요람이자, 검증된 브랜드였다. 가왕 조용필도 고교시절 파주 장파리 미군부대 앞 술집에서 연주하다 쫓겨난 일화가 전해진다. 미군들은 종종 인기가 식은 LP판들을 부대 밖으로 원반던지기 하듯 날리며 놀았는데, 이를 수집해 공부한 청년들 가운데 신중현이 있었다.
미군들에게 초콜릿을 조르던 꼬마들이 노신사가 된 사이, 영양실조를 걱정하던 대한민국은 개도국에 연간 6조5000억 원을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과거 AFKN과 ‘백판’으로 팝송을 배우던 우리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수출하는 문화 강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아침, 오늘이 있게 한 한미동맹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