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환율, 美 물가 예상 부합에 상승폭 축소…1409.70원 마감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큰 폭의 약세를 보이며,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410선을 돌파한 뒤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넉 달 만에 1410원대까지 올라섰다. 미국 경제 지표 호조로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가운데 한·미 통상협상 불확실성까지 고조된 영향이다.
특히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미투자금 3500억달러에 대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언급하면서 시장 우려가 확대됐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8.4원 오른 1409.0원으로 출발한 뒤 장 중 1412.1원까지 상승했다. 이는 지난 5월 15일(장 중 고가 1412.1원) 이후 넉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27일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시장 전망에 부합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원화 강세’ 현상이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1409.00원까지 하락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8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달 대비 0.3%,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7% 올랐다. PCE 가격지수는 연준이 주요 기준으로 삼는 물가지표다.
원·달러 환율은 8월부터 1380∼1400원 범위에서 등락했으나, 지난 24일부터 사흘째 오름세를 탔다. 24일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400원을 뚫은 데 이어, 25일 주간 거래에서도 1400원을 넘었고 야간 거래에서는 1410원까지 뛰어 넘었다. 최근 환율 상승은 달러 강세 때문이다.
위험회피 심리가 고조되고, 미국 경제도 호조를 나타내면서 미 금리인하 기대가 약화한 영향이다. 미 상무부는 25일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가 3.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발표한 잠정치(3.3%)보다 0.5%포인트 상향 조정됐으며, 지난 2023년 3분기(4.7%) 이후 7개 분기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97선에서 거래되다가, 지난 17일 96.21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이날 98대로 올라섰다.
한·미 통상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원화 가치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이행하느냐를 놓고 한·미 양국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미국은 지분 투자 방식으로 달러 현금을 한국에서 받아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하고, 투자 이익도 투자금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등 ‘일본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 요구한 3500억달러 전액 현금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환율이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관세율 25%를 받아들이면 대미 수출 급감, 경제성장률 하락 등이 불가피해 원화 가치 절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환율 경로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한·미 협상이고 그 윤곽은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전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