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게임체인저 메타렌즈...탑티어는 삼성

렌즈에 달린 'IT 전쟁'

2025-09-29     이태현 공학박사

삼성과 애플이 누가 더 얇은 스마트폰을 만드는가 경쟁이 치열하다. 스마트폰의 경량화는 결국 렌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삼성이 머리카락보다 더 얇은 메타렌즈의 양산 가능성을 보여주며 탑티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메타렌즈는 단순히 스마트폰의 렌즈 이슈에 머물지 않는다. 국방·의료 등 가볍고 정확할수록 더 좋은 분야에서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삼성과 포스텍이 앞장서 해내고 있는 중이다.

메타렌즈를 설명한 그림, 수십억 개의 나노기둥을 세워 빛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누가 더 얇은가

삼성이 화두를 던진 스마트폰 경량화 전쟁이 시작됐다. 사실 삼성은 그냥 출시한 것뿐인데, 중국의 비보 및 아너 등이 ‘우리가 더 얇다!’고 주장하면서 자존심 싸움(?)을 걸어왔다. 하지만 막상 중국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비교를 해보니 ‘역시 중국답다’ 싶을 정도로 오히려 가만히 있던 삼성의 광고만 해준 꼴이 됐다.

최근에는 애플이 아이폰 에어를 출시하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 에어는 5.6㎜ 두께로 갤럭시 S25 엣지의 5.8㎜를 0.2㎜ 차이로 누르고 가장 얇은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을 쟁취했다.

하지만 실물을 보면 갸우뚱해진다. 정도가 심한 ‘카툭튀’, 즉 튀어나온 카메라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 많은 기능들을 희생했지만 가격은 오히려 올렸다. 이같은 납득되지 않는 결과물로 현재 커뮤니티에선 여러가지로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애플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 압축 기술이 삼성보다 못하다는 것은 확실히 보여주었다.

문제는 렌즈, 답은 메타렌즈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부피와 왜곡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카메라와 스마트폰·노트북·자동차 센서, 그리고 곧 다가올 XR 안경까지 공통적으로 빛을 굴절시키는 두꺼운 렌즈라는 한계에 막혀 있다. 아무리 해상도를 높이고 칩 성능을 끌어올려도, 결국 광학계가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는 빛을 모으고 굴절시켜 이미지를 형성한다. 문제는 파장마다 굴절률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색수차’(렌즈를 통과하는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 발생하는 광학 수차)인데, 파장이 다른 빛이 렌즈를 통과할 때 각기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맺어 이미지가 번지고 흐려지는 현상이다.

전통 광학에서는 이를 보정하기 위해 렌즈를 여러 장 겹쳐야 했으며 이는 곧 부피와 무게 증가로 이어졌다. 선명한 화질을 담보할수록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이 점점 튀어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업계는 가볍고 얇으면서도 색수차 없는 렌즈라는 모순적인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새로운 해법이 필요했고, 메타렌즈가 그 답으로 떠오른 것이다.

만약 복잡한 유리 렌즈들을 얇은 판 하나로 대체할 수 있다면 이는 IT 역사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구글·애플·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XR 시대의 핵심 승부처로 삼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폰 에어의 ‘카툭튀’를 비웃는 밈. 세계 각국 커뮤니티에 돌고 있다.

삼성·포스텍이 선두 점한 메타렌즈

삼성전자는 최근 포스텍과 함께 센티미터급 무색수차 메타렌즈(metslens)를 구현해 냈고 이를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메타렌즈를 만들며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준 것이다.

메타렌즈는 평평한 판 위에 수십억 개의 나노 기둥을 세워 빛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다. 전통적인 굴절렌즈가 빛을 휘게 하는 곡률을 이용했다면 메다렌즈는 빛 자체를 다시 쓰는 프로그램과 같다. 단 한 장의 얇은 렌즈로 여러 장의 유리렌즈가 하는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다.

메타렌즈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나와 있던 것이다. 문제는 기술력과 수율이었다. 100개를 제작 시도했는데 1개만 완성되면 상업적 가치도 경쟁력도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삼성이 삼성이 대단한 것은 렌즈의 고질적 문제인 색수차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대량 제작 가능성까지 보여줬다는 점이다.

삼성의 메타렌즈 연구는 단순한 얇은 렌즈 구현을 넘어, 차세대 디스플레이·센서·XR 기기를 가볍고 선명하게 만드는 광학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빛을 다루는 마지막 층위의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이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IT 역사 바꿀 게임체인저

상용화 및 상업화까지는 거리가 좀 있다. 삼성은 대량 생산 공정 ‘가능성’을 논문을 통해 보여준 것이지, 신뢰성과 수율의 허들을 넘은 것은 아니다.

렌즈는 광학 부품 특성상 단일 결함에도 성능이 민감하게 좌우된다. 수십억 개 나노 구조가 배열된 메타렌즈에서 불량률을 제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소비자 시장에 쓰이는 렌즈는 수년간 다양한 환경(열·습도·충격)을 견뎌야 하는데, 아직 메타렌즈의 장기 신뢰성 데이터는 부족하다.

또 하나는 생산 생태계이다. 기존 유리렌즈는 일본·독일 기업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정밀연마, 코팅 생태계가 있다. 카메라 다루는 사람들이면 렌즈는 일본 또는 독일이라고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반면 메타렌즈는 반도체식 공정, 폴리머 인쇄, 나노패터닝이 융합된 신생 기술로 소재·장비·검증 프로세스가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의 가치는 가능성 자체를 열었다는 점에 있다. 실패하더라도 이런 시도가 시장과 학계에 던지는 신호는 크다. 완벽하게 상업화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확보되는 나노 인쇄 공정, 고분자 광학소재, 설계 알고리즘은 한국 디스플레이, 센서 산업 전반의 자산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손해 볼 것 없는 실패’다.

과거 광학은 유리와 연마기술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나노 패터닝(분자나 나노 입자를 선택적으로 제어하여 마이크로 및 나노 크기의 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술)이라는 반도체적 사고방식으로 삼성과 포스텍이 게임 체인징을 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이 독점하던 광학 시장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이 새로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메타렌즈가 상용화되면 삼성 스마트폰 뒷면 ‘카툭튀’도 사라질 것이다.

의료·국방 시장에 시도 가능성

그렇다면 이 얇고 정밀한 렌즈를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산업군은 어디일까? 초기에는 가격보다 성능이 우선인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먼저 뿌리내릴 것이다.

내시경·뇌수술용 미세 카메라 등 의료 영상 장치는 크기와 무게 제약이 극심하다. 기존 유리렌즈로는 직경 수밀리미터 이하에서 색수차 없는 영상을 구현하기 어렵다. 한 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내시경 장비에서, 메타렌즈가 몇십만 원 더 비싸다 한들 장비 전체 가격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환자의 안전, 수술 성공률, 진단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면 의료진은 그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의료·국방·우주·산업 장비 같은 영역은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도 대체불가한 니즈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싼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좀 더 가격이 안정되고 충분한 대량 생산 공정이 정착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스마트폰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번 삼성과 포스텍의 시도는 메타렌즈가 단순히 논문용 광학 장난감이 아니라 실제 산업 니즈(needs)와 연결될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