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투시경] 순탄치 않을 대북 END 이니셔티브

2025-09-28     정창열 북한연구회장
정창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교류(Exchange)와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앞 글자를 따 ‘종결’을 의미하는 단어(END)를 만든 것이다. 193개 회원국 앞에서 기존에 제시했던 ‘페이스 메이커론’과 ‘3단계 비핵화론’(동결→축소→폐기)과 함께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큰 줄기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 가지 구상(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비핵화 이전에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면 자칫 북핵을 용인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ND 이니셔티브가 순탄치 않을 것임은 최근 김정은 남매가 한 일련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여정은 지난 7월 28일과 7월 29일, 8월 14일과 8월 20일까지 네 번에 걸쳐 담화를 발표, 대미·대남 메시지를 쏟아냈다. ‘허망한 개꿈’(8월 14일), ‘미국의 특등 충견’(8월 20일) 등은 문재인 정부 당시 내놓은 ‘삶은 소대가리’(2019년 8월), ‘특등 머저리’(2021년 1월)에 비견될 만한 막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및 철거, 민간 대북 접촉 승인, 한미연합훈련 일정 조정 가능성 등 북한에 우호적인 조치와 화해 메시지를 밝혔다. 김여정 담화는 우리 정부가 취해 온 대북 메시지에 대한 ‘답신’ 성격이 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싸늘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대북 유화조치에 대해 김여정은 "아무리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을 평화의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한국은 외교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화할 의도가 없음을 내비쳤다.

김정은도 27일 핵 관련 분야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의 핵대응태세를 계속 진화시키는 것은 필수적인 최우선 과제"라며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힘에 의한 평화유지, 안전보장은 절대불변 입장"이라고 강조, 핵 포기 불가 방침을 거듭 밝혔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 20~2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비핵화 요구 철회’를 조건으로 미국과의 대화 용의를 밝히면서,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는 "일절 상대 않을 것"이라며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선대인 김정일이 1990년대 후반 중국식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고 한 발언과 결을 같이한다. 핵 포기와 마찬가지로 개혁개방은 정권 붕괴와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남북 연락 수단이 단절된 가운데, 김정은이 ‘대남 접촉 거부’를 보이는 현실을 고려할 때, END 이니셔티브의 첫 단추인 교류의 실행조차도 불학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END의 최종단계인 비핵화가 실현되기까지는 그 전도(前途)가 지난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김정은은 확보해 놓은 핵 능력을 바탕으로 이른바 모택동 전술로 알려진 타타담담(打打談談) 담담타타(談談打打)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상대가 강할 때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그 반대 경우는 가차 없이 짓밟아버리는 전술을 구사해 한미공동방위태세 이완, 남남 균열 등의 효과를 거두려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실패로 끝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철을 교훈삼고 김씨 정권의 본성은 강약약강(强弱弱强)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ND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