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개종까지도 사용하신 하나님…“완악한 날 부수신 주님의 손길”
■ 유상현 목사가 고백한 '절대 은혜의 여정' “나는 주의 일을 하고, 주는 내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이 가슴에 들어오던 날, 삶의 방향이 뒤집혀 ‘착한종교회’의 일상은 선교지...미혼모·가출청소년·노숙인·중독자가 함께 사는 곳 "종에게 선택권은 없습니다...씨 뿌리면 주님이 거두십니다"…공급과 변화의 실제
유상현 목사(착한종교회)가 CBS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간증을 전했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은 내 일을 하신다”는 그의 삶의 고백은 프로그램 내내 반복되어, 인간의 계산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지난 10일 방송에 출연한 유 목사는 고교 시절 “왜 공부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품고 하나님께 씨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동일한 답을 직접 들은 순간 방향이 바뀌었다고 했다. 주일 밤 성경을 읽고 시험 범위를 ‘훑기만’ 한 채 고사장에 들어갔지만, 페이지와 문단이 떠올라 오픈북처럼 보이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고 회상했다.
뒤에서 놀던 성적이 정교 상위권으로 도약해 학교 대표 상까지 받았지만, 그는 “그때도 ‘내 머리가 원래 좋았나 보다’고 생각했다”며 “하나님 체험의 본질을 깊이 알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고3 어느 토요일 밤, 가슴에 불이 붙듯 임한 성령의 체험 이후 그는 “세상이 어제와 완전히 달라 보였다”고 했다. 교회 분쟁 와중에도 미워하던 장로를 끌어안고 울 만큼, 사랑할 수 없던 이를 사랑하게 하신 변화가 찾아왔다.
“그날 이후 학업을 방학하고 주님의 일에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마다 기도모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부천시 고3 중심으로 300명이 모였죠.” 그해 그는 어둠의 방해(영적 공격)도 경험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주님의 임재가 분명했습니다.”
수능은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어 찍듯이 표기했는데 전국 상위 2% 성적이 나왔고, ‘신의 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어 연세대 신학과 본고사(주관식·논술)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게 다 써졌다”며 합격했다. 그러나 입학 직후 “성령이 떠난 것 같은 공허”에 빠졌고, 되돌아오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 끝에 베란다에 섰다.
“결국 ‘안 받아주실 것 같은 두려움’에 내려와 하나님을 부인하고 ‘개종’을 선언했습니다.” 휴학과 복학 사이, 그는 불교학생회에 들어가 ‘진리’에 대해 토론하며 방황했다. 그때를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다른 사람은 설교만 들어도 믿는데, 나는 너무 완악해서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표적과 체험으로 이끄신 거예요. 또 ‘나만 옳다’는 교만을 부수시려 내가 믿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데려가셨던 겁니다.”
대학교 3~4학년 무렵, 오랜 침묵을 깨고 들려온 두 마디가 그의 심령을 찔렀다. “내가 너를 연대에 보냈는지 아니?”, “너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어.” 그는 “주시던 체험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완악한 나를 꺾기 위한 자비의 손길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호주 한인교회에서 전도사 사역 5년, 그는 늘 분노와 공허에 시달렸다. “안 변하는 청년들 보며 화가 나서 설교가 호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이 제게 ‘살아’ 들어왔어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 설교가 호평받는 것이 주님 사랑의 증거가 아니었어요.”
그는 ‘주님 사랑’으로 초점을 전환했다. “하루 종일 어디서 무엇을 하든 예수님만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청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방 숨겨서라도 예배 붙들던 우리 방식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교회를 목회하셨다는 걸 봤죠.”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마음이 분명해지자, 아내는 이렇게 못박았다. “처자식 생계는 하나님이 고민하실 문제.” 교회가 정해지지 않아 여기저기 ‘때우듯’ 예배를 드리다 “너 자꾸 예배를 때울래?”라는 책망을 받고, 집에서 제대로 예배하기 시작했다. 설교·찬양·말씀공부를 ‘세 식구’가 정성껏 드리던 예배가 착한종교회의 첫 걸음이 됐다.
그의 목회는 ‘함께 살기’로 요약된다.
미혼모와 아이: 쉼터를 전전하던 25세 미혼모와 두 살배기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아이 엄마의 소망은 ‘남들처럼 살고 싶다’였어요.” 대학은 꿈도 못 꾸던 그가 특별전형으로 대학 입학, 성적 우수로 학사까지 마치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청년들을 섬긴다.
위탁아동: 주일학교 4학년 막내는 부모 분리 조치 위기에서 공식 위탁(가정위탁)을 허락받아 가족이 됐다. 지금은 중2, “엄마가 둘, 아빠는 하나”인 집에서 자라며, 친모와 양육가정이 협력한다.
가출·일진 청소년: 교회 지하 예배당에서 함께 자고 먹이며 품었다. 담배·욕설·소란, 심지어 비닐에 대변을 보고 버리는 일까지 겪었지만, 성도들이 원망 대신 교대로 밤을 지키고 밥을 챙겨준 이야기를 전했다.
도박중독 노숙인: 7년을 함께한 성도는 도박에 무너졌다가 회복을 반복한다. “월세도, 교회 재정도 탈탈 털려 봤습니다. 다툼이 격해져 레슬링하듯 몸싸움도 했고, 저는 예배당에서 ‘여기서 죽여달라’며 울었습니다.” 그 밤, 한 집사가 들러 어깨를 토닥이며 울어준 장면을 그는 “하나님이 나를 품으신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 형제는 오늘도 ‘선교사 될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이젠 비웃지 않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반드시 하실 수 있습니다.”
현실의 생계는 어떻게 했을까. 편의점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매일 문고리에 걸어 둔 동네 할머니 덕분에 “까마귀가 엘리야를 먹인” 성경이 생생히 재현됐다. 전기·월세가 밀려가던 정확히 1년째, 한 성도가 “기도 중 생각났다”며 1140여만 원을 입금했다. “주님이 ‘1년치 사례비’라고 하셨어요. ‘현실을 볼래, 나를 믿을래’ 물으셨던 것 같습니다.”
거처가 철거되던 시기, 동사무소 직원의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 전환→LH 임대주택 연계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월세가 나라에서 나와요. 주님이 내 일을 맡아 주셨습니다.”
그는 교회 이름 ‘착한종’을 이렇게 해석했다. “종에게 선택권은 없습니다. 주님이 누구를 보내시든, 어디에 두시든, 무엇을 맡기시든, 저는 그 자리에서 순종할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후원받기보다 후원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실제로 성도 30여 명 남짓, 취약계층이 절반인 공동체가 작년 선교·구제비 4500만 원을 흘려보냈다.
“12평 LH아파트에 사는 싱글 엄마 집사님이 독일 선교사님을 월 100만 원으로 2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면, 주님이 5천을 먹이십니다.”
유 목사는 방송 말미, 자신의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은 내 일을 하신다. 씨를 뿌리는 건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종에게 필요한 건 순종뿐입니다.”
그의 간증은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만 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첫 사랑과 긍휼, 그리고 ‘함께 살기’라는 제자도의 실재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여줬다.
“주님은 오늘도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유상현 목사의 눈물 어린 고백이, 많은 이들을 사랑과 순종의 자리로 다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