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화스와프, 한·미는 안되고 아르헨·미는 된다?
‘남미의 병자’ 아르헨티나에 미국이 먼저 통화스와프 제안해 총선 앞둔 밀레이 대통령에 정치적 힘 실으려는 의도로 해석 미국에 투자 한다는 한국엔 무제한 통화 스와프 단칼에 거절 대통령·총리 모두 통화스와프 필요성 강조…美 “검토하겠다”
아르헨티나는 미국의 선제적 제안으로 대규모 통화스와프를 신속히 체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미국의 거절 이후 협상이 답보 상태다. 대통령실·총리실·한국은행이 모두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는 불투명하다. 그 사이 현대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어, 조속한 관세협상 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 약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약속했다. 이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자신의 엑스(X)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아르헨티나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통화스와프 등 모든 가능한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통화스와프를 요구한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트럼프 행정부가 아르헨티나에는 요청도 받기 전에 먼저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IMF 지원금 상환조차 연체해 ‘남미의 병자’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에 미국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통화스와프 성사 여부가 트럼프 대통령 의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아르헨티나 경제 규모에 비춰 200억 달러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가 다음 달 총선을 앞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강경 보수 성향의 밀레이 대통령은 미국 보수 진영과 긴밀히 교류해왔으며,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만난 외국 정상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상을 좀처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현지시간) “통화스와프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협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화스와프 없이는 충격이 너무 크다”고 강조하면서도 “국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시한 때문에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25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 투자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70%를 넘는다”며 “통화스와프가 없다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미국을 방문해 베선트 장관과의 면담에서 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정책실장이 “시한 때문에 원칙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과 달리, 미국은 별도의 시한을 정한 적이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설명이다. 오히려 협상이 지연될수록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관세협상 장기화로 자동차 산업에서 직접적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일본산에 이어 유럽산 자동차에도 1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한국산은 여전히 25% 관세가 부과중이다.
25일 미국의 한 시장조사업체가 발표한 완성차 15개사의 평균거래 가격을 비교해 보면 이번 관세부과 이후 일본산 도요타 자동차 가격은 약 12만원 인상된 반면, 현대자동차는 약 126만원 인상됐다. 한국산 자동차의 강점인 가격경쟁력이 사라졌기에, 관세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판매 부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