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벙커에 빠진 대한민국

2025-09-24     이정민 청년기업가
이정민

지난 19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경기에서 동반 라운딩 선수의 룰 위반을 지적한 사건이 있었다. 상대 선수는 공을 닦은 뒤 원래 떨어졌던 흙바닥이 아닌 잔디 위에 내려놓았다. 박혜준 선수는 ‘마커’로서 규정 위반이 의심되는 동료 선수의 플레이를 경기위원에게 공식적으로 알린 것뿐이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이 이 정상적 행위를 고자질, 배신, 동업자 정신 위반으로 낙인 찍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동료를 신고하다니’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박 선수는 라운드 종료 후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공정을 지키려다 오히려 사회적 공격을 받은 것이다.

박혜준 선수 사건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규칙을 지킨 선수가 오히려 손가락질 받고, 규칙을 어긴 선수는 ‘동업자 정신’이라는 온정의 포장지로 감싼다. ‘동업자 정신’이라는 이름 아래 위법과 비윤리를 감싸는 문화가 카르텔로 발전하고, 그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왕따가 된다. 그녀의 눈물은 단지 개인의 억울함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제 식구 감싸기’ 카르텔의 상징이다.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특히 진보진영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공정·정의·민주라는 말로 치장하지만, 막상 자기 편에게는 세상 관대하다. 법도 규칙도 ‘우리 편’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반면 보수진영에게는 확대경을 들이대 흠집을 찾아내고, 조금만 잘못해도 ‘적폐’라는 낙인을 찍는다. 내로남불이란 말도 식상할 정도다.

이런 태도는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현 2030세대가 진보진영에 등을 돌리게 된 중요한 이유다. 이들은 집단적 가치보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한다. 진보진영이 외치는 공정은 실상 ‘선택적 공정’이었음을, 정의는 ‘자기 편을 위한 정의’였음을 이제 간파했다. 2030세대가 현 집권여당을 선뜻 지지하지 않는 것도, 그들이 과거의 보수정권을 비난하던 언어로 지금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온정주의식 문화가 젊은 세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켜도 손해 본다"는 학습효과는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좌파진영의 카르텔, 선관위 등 공공기관에서 보여준 ‘제 식구 감싸기’ 모두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한국 강성노조들이 지금의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원리이기도 하다. 기득권이 된 4050세대가 공정을 갈구하는 2030세대를 억누르는 논리이기도 하다.

박혜준 선수의 눈물은 한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스포츠가 규칙을 잃으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듯, 정치도 원칙을 잃으면 신뢰를 잃는다. 자칭 진보세력들이 내로남불식 동업자 정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의 ‘공정’은 여전히 먼 미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