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딱지는 언론이 만든 정치적 무기

2025-09-17     이정민 청년기업가
이정민

찰리 커크 피격 사건 이후 한국 언론이 보인 반응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청년 보수 리더이자 터닝포인트USA 설립자인 그에게 국내 언론은 별다른 맥락 없이 ‘극우’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는 단순한 해외 인물 보도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언론이 어떤 렌즈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 언론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설정할 때, ‘프레이밍’(규정)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데 능숙하다. 미국 미디어학자 로버트 엔트먼은 ‘프레이밍 효과’를 "사건과 인물을 특정 관점에서 선택·강조함으로써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극우’라는 키워드는 정치·사회 뉴스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정 관점에서 상대 진영 비판에 동원되는 비중이 높았다.

극우라는 단어는 강력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상대를 단번에 낙인 찍는 효과를 낸다. 좌파 진영은 오래전부터 보수 전체를 극우와 동일시하는 언어 전략을 사용해 왔고, 심지어 전통 보수 언론이라 불렸던 조·중·동조차 이 표현을 쉽게 차용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따뜻한 보수’, ‘합리적 보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한편, 다른 목소리를 ‘극우’로 밀어내는 현상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즉 한국에서 극우는 이들의 정치적 레토릭에 의해 탄생된 유령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극우라는 개념은 본래 정치학적으로 명확한 정의가 있다. 극우(extreme right)는 권위주의, 인종주의, 극단적 폭력성 등 헌법적 질서를 위협하는 사상을 뜻한다. 한국에서 전통적 보수로 불리는 가치들인 시장경제, 국가안보, 법치주의 등은 이런 극단적 이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극우’라는 프레이밍이 남용되면서, 보수 전체가 비이성적 집단으로 묘사되는 왜곡이 벌어진다.

문제는 언론의 프레이밍이 언어 선택을 넘어 정치적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디어학자 반 다이크는 언론의 언어가 사회 권력 관계를 강화·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즉 특정 집단에 ‘극우’라는 레이블을 씌우면,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이미 공론장에서 정당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중도나 보수 내부의 다양한 분화가 무시되고, 보수 전체가 혐오나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야 할 토론과 다양성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국내 언론이 찰리 커크에게 붙인 ‘극우’라는 딱지는 그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 언론의 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는 언론의 가장 큰 무기인 프레이밍에서 나오는 정치적 편향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

특정 매체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극우라는 단어를 블라인드 처리한 채, 사실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언론이 만든 정치적 무기 앞에서 우리들의 비판적 사고야말로 마지막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