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관세협정, 비싼 청구서는 기업 몫

2025-09-16     김용식 前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김용식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정부는 ‘합의문이 없는 협상이 가장 잘한 협상’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상황을 덮으려 했다. 그러나 국익은 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한국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조지아에서는 한국인 근로자 300명 이상이 구금됐다가 귀국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우리가 받아든 것은 제대로 된 협의문이 아니라 청구서, 그 청구서가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날아오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3500억 달러, 우리 돈 486조 원의 현금 투자를 요구하며 수익의 90%를 가져가겠다는 조건을 걸고 있다.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보유액인 4100억 달러의 85%에 해당하는 규모이기에 한국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당장 뼈아픈 건 일본과의 격차로, 자동차 업계부터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5500억 달러 투자 합의를 매듭진 일본은 자동차 관세를 15%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2.5%의 관세를 부담했던 일본 차는 12.5%가 올라 15%의 관세를 물고, FTA효과로 0%였던 한국 차는 15%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미국에서 현대 아반떼가 도요타 코롤라보다 1100달러 저렴했지만, 관세 적용 이후에는 오히려 1000달러 더 비싸지게 된다. 우리 관세는 아직 25% 유지 중이고, 일본 차는 당장 15% 관세를 적용받으며 미국 시장에서 호황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 경쟁력에서 일본 차가 한국 차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여건이 마련된 국내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으로 일부 방어를 시도하지만, 경쟁국 대비 취약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관세 역전이 길어지면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떨어지고, 그 충격은 부품업계와 수출 전반으로 번질 전망이다. 고율 관세가 계속되면 완성차 업체는 부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국내 업체가 아닌 미국 현지업체로 공급망을 바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는 늘 재정과 외교의 무능이 국가 위기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과 30년 전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의 위기는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 이미 나라 빚은 1300조가 넘었는데 외환보유액이 더 빠져나가고, 환율과 신인도가 흔들릴 위기에 있으니 경제의 근간이 뿌리째 뽑혀 나갈 것만 같다.

한국 경제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갇혀 있다. 무리한 현금 투자를 수용해도 재앙이고, 관세를 맞아도 재앙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까지 상황을 끌고 온 정부의 무능한 협상력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확실한 방안을 내놔야 한다. 자화자찬 국민 기만을 멈추고 국민과 기업 앞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외교 실패를 과감히 인정하고, 야당 탄압도 멈춰 국익을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괜히 더 오기를 부린다면, 제2의 IMF를 원하지 않는 국민들에 의해 네팔 같은 상황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