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듣는 인간 Homo Auditus] (90) 말하기 쓰기의 기본은 듣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읽기나 쓰기는 가르칠 내용이 반듯하게 알차게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듣기는 좀 막연하다고 느낀다.
한국어 못 알아듣는 한국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냥 귀만 열어 놓으면 들리기 마련 아닌가 생각한다. 외국어 듣기는 구체적 학습과 인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듣는 데 무슨 특별한 학습이 필요하겠는가 한다. 이는 듣기 능력(역량)이 어떻게 길러지는지에 대한 단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오해는 듣기 교육을 지나치게 고립적으로 가두어 두고, 듣기 교육만을 배타적으로 다루려는 데서 생긴다. 듣기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혹시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활 현실에서 인간의 듣기 활동은 고립적으로 영위되지 않는다. 말하기 활동과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듣기다. 말하기가 섞이지 않는 듣기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듣기 능력의 핵심은 말하기 역량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잘 말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책을 읽고 지식 소양이 많이 쌓인 사람은 어려운 강연을 듣고 쉽게 소화한다. 전문 주제의 세미나에 참여해 패널들 간 오가는 발언을 평가해 가면서 듣고, 객석에서 질의를 통해 자신의 견해도 말한다. 좋은 문학, 좋은 영화, 좋은 공연를 읽(보)고서 토론에 참여해 듣고 말할 수 있는 문화적 소양은 읽기와 듣기가 어떻게 서로 긴밀히 돕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듣기 역량은 쓰기 역량과도 서로 돕는다. 선생님 강의는, 듣고서 내 노트에 어떻게 써놓는지에 따라 내 지식이 되기도 하고 아니 되기도 한다. 내가 읽지 못한 책이라도, 누군가 전해주는 내용을 잘 듣는 것만으로도 간접독서에 이른다. 유능한 기자 역시 우선 잘 들어야만 한다. 특종 기사는 그가 들은 내용을 쓰는 데서 비롯한다. 듣기 혼자서 쑥쑥 자라는 일은 결단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