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美 장수산업, 25년간 17조원 유치…"이제 주류 담론"
인간의 ‘장수’와 ‘불멸’에 대한 꿈이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으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장수와 불멸’을 소재로 나눈 대화가 지구촌 화제로 떠 오른 가운데 실제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장수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인간의 장기는 끊임없이 이식될 수 있다. 당신은 오래살수록 젊어지고 심지어 불멸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 주석이 "일각에서는 인간이 150살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응답했다. 지구촌을 움직이는 ‘스트롱맨’(strong man)으로 불리는 이들은 72세 동갑으로 장수와 불멸에 대한 꿈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반영하듯,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인간의 수명 연장을 연구하는 ‘장수 산업’(longevity industry)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시와 시장정보업체 피치북 데이터, 상장기업 발표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25년간 이들 억만장자가 장수 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50억 달러(약 6조900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 투자자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큰 손 투자자인 피터 틸,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러시아 출신 벤처 투자자인 유리 밀너, 글로벌 벤처 투자자 앤드리슨 호로비츠 공동 설립자 마크 앤드리슨 등이다. 피터 틸은 직접 또는 펀드를 통해 12개 기업에 7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틸은 가상화폐 거래소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과 2021년 세포 노화를 늦추는 연구를 하는 뉴리밋을 공동 창업해 지원하고 있다. 이 스타트업은 구글 CEO 출신의 에릭 슈밋, 벤처 투자자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등 9명 넘는 억만장자로부터 2억 달러 이상을 유치했다. 올트먼은 스타트업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에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스타트업은 노화 세포를 재생하는 신약 개발을 목표로 한다.
장수 산업은 현재 200여개 스타트업과 비영리 단체, 약 1000명의 투자자로 얽힌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들 스타트업이 지난 25년 동안 모은 자금은 125억 달러 이상으로 억만장자뿐 아니라 SNS 인플루언서, 유명 과학자, 배우들도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투자자 중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장수산업에 뛰어드는 투자자도 있다. 비옴 라이프 사이언스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나빈 자인은 부친을 췌장암으로 잃은 뒤 맞춤형 건강 검사와 영양 보충제를 개발하는 회사를 세우고 3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는 "노화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장수 연구자인 발터 롱고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개발한 ‘단식 모방 다이어트’를 실천 중인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는 롱고 교수가 설립한 L-뉴트라(L-Nutra)의 4700만달러의 투자를 주도하기도 했다. WSJ은 "억만장자 투자자들 덕분에 한때는 학계의 변두리에 있던 장수 연구가 이제는 대중문화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며 평가했다. 이제 ‘장수 산업’이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