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스마트 워치 대신, 피부에 스마트 스킨
삼성의 독보적 기술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화면·센서·회로·배터리가 모두 늘어나는 반도체를 만들었다. 1㎠에 10만 개 트랜지스터를 넣고, 크기를 두 배로 늘려도 성능이 그대로다. 네이처에 실릴 만큼 기술력은 이미 인정받았다. 아직 이 반도체의 시장은 없지만 전자 피부·의료 패치·미래형 웨어러블 등 활용될 곳은 무궁무진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손잡고 개발한 이 기술은 아이폰을 넘어설 새 플랫폼, 누구나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는 차세대 스마트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휘어지는 반도체, 늘어나는 기판
현재 이 분야에 있어서는 전 세계에서 삼성을 따라올 자가 없다. 아무도 하지 않아서 아무도 못 따라오는 분야.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선두에 있는 ‘스트레처블 디바이스’(Stretchable device) 분야이다.
이건 폴더블도 아니고 롤러블도 아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술로 디스플레이가 늘어나고, 트랜지스터가 휘고, 센서는 피부처럼 붙는다. 정확하게는 디스플레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인 트랜지스터를 휘게 만드는, 상식을 벗어난 기술이다. 기판이 고무처럼 늘어나고 회로는 찢어지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기술이라서 아무도 안 했다. 시장도 없고 경쟁자도 없다. 삼성은 이 기술을 가지고 혼자 앞서고 있다.
기계적 통신적 기능 패치 하나에
삼성전자는 가능성을 말로만 강조하지 않고 실물을 통해 먼저 증명했다. 2021년 세계 최고 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삼성 출신 연구자들이 논문을 하나 발표했는데 다운로드 수가 무려 2만에 육박한다.
삼성은 OLED·광센서·트랜지스터·배터리·통신 모듈까지 모든 구성요소를 신축성 있는 소재로 구현해 자가 구동 헬스 모니터링 패치를 선보였다. 이 패치는 외부 기기 없이 스스로 작동하며 심박수와 산소포화도 같은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다.
기계적 전기적 통신적 기능이 늘어나는 하나의 패치에 집약됐다는 점에서 스트레처블 일렉트로닉스의 실현 가능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은 기술, 삼성 선두
스마트 워치는 많이들 사용하고 있다. 기계 자체는 똑똑하고 편리한데 내 몸과의 연결은 어디까지나 스마트폰의 확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손목에 가해지는 무게감 또는 시계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스트레처블 디바이스는 다르다. 센서가 피부에 밀착되고, 회로가 신축성과 성능을 동시에 갖추며, 패치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기계가 몸에 붙는다는 개념이고 더 나아가 기계가 몸의 일부가 된다는 개념이다. 스마트 워치가 아니라 스마트 스킨인 것이다.
스트레처블 디바이스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라기보다는 공학이 다시 사람의 몸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기술은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미래가 지금 삼성으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있다.
미래에 전자피부 가능성
디스플레이는 처음엔 딱딱한 박스였고, 이후 벽에 붙는 TV가 나왔고, 이제는 말아서 넣는 롤러블과 접는 폴더블까지 상용화 됐다. 그리고 지금 디스플레이는 늘어나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디바이스를 구부릴 수 있게 바꾸는 건 얇은 유리나 고분자 기판을 쓰는 식으로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스트레처블은 다르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로 단순히 구부러지는 걸 넘어 50% 이상 늘어나면서도 전자 소자의 기능이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무기물 소재는 이런 변형을 견디지 못하기에 결국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이론적으로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첫째는 늘어나는 소재를 쓰지 않더라도 설계를 잘해서 소자 전체가 늘어날 수 있는 이론이다. 두 번째는 소재 자체를 신축성 있게 설계하는 방식이다. 전자 소자를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 즉 기판·전극·반도체·유전체·보호막까지 모두가 신축성 있는 소재로 구성된다면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삼성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단점도 많고 기술적인 어려움도 많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설계의 자유도가 높고, 진정한 스트레처블 플랫폼을 만드는 핵심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레처블 디바이스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라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조건에서 전자기기를 다시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 말 그대로 몸에 붙는 ‘전자 피부’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기술이다. 그만큼 진입장벽은 높고, 선두 그룹은 매우 적다. 그러나 한 번 기술이 안정화된다면 그 응용 범위는 전례 없이 넓어질 것이다.
현실적 문제도 복 가능성
이런 대단한 연구 결과가 아직 실험실 안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는 대량 생산과 수율 문제다. 하나의 기판에 얼마나 많은 소자를 담을 수 있는가, 대량 생산 공정에 적용이 가능한가에 대한 해답이 없으면 어떤 기술도 현실로 이어지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스탠퍼드대학교는 잉크젯 프린팅 기반 접근으로 이 문제의 돌파구를 찾았다. 전극·유전체·반도체·보호막까지 모든 요소를 프린터로 인쇄해 만들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뇌의 시냅스 구조처럼 작동하는 트랜지스터 어레이(array:데이터들로 이루어진 자료 구조)를 제작했다.
이 연구는 패턴의 유연성과 대량 생산 가능성을 동시에 증명했다. 논문이 이 정도로 발표됐다면 실제 삼성전자가 보유한 기술력은 훨씬 더 발전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폰 막고 세계 리드할 무기
웨어러블 기기 측면에서는 애플이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 갤럭시 폴드 시리즈가 이 격차를 한 발 좁혔다면 스트레처블 디바이스는 그 격차를 한 번에 추월할 수 있는 차세대 플랫폼 전환의 열쇠로 보인다.
폴더블이 화면 크기와 휴대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스트레처블은 기기의 물리적 경계를 아예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시계처럼 차는 것이 아니라 피부처럼 붙이고, 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니라 몸에 흡수되듯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기기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전자피부(e-skin)나 헬스케어 패치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영향력 있는 모든 IT기업들이 차세대 플랫폼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려고 경쟁 중이다. 그 사이에서 한국의 삼성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먼저 완성해 버리는 것이다.
스트레처블 집적회로는 삼성전자가 고성능·고집적·기계적 자유도·대면적 양산 공정과의 정합성까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결정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발표된 스트레처블 집적회로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연구이며 학문적 산업적 파급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결정적 전환점이다. 아이폰 독주를 꺾기 위한 삼성의 다음 카드이자 한국이 다시 세계를 앞설 수 있는 하나의 무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