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투시경] "北 대남 확성기 철거" 발표 해프닝
김여정이 지난 1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서 김여정은 "항시적인 안전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위태하고 저렬한 국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보다 선명해져야 하며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인 위협 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 고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7월 28일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대북 긴장 완화 조치를 평가 절하하고 대남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당시 김여정은 ‘한미동맹 맹신·대결 기도’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전임 정권과 다를 바 없으며, 따라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북 방송 중단을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돼’, APEC회의 김정은 초청 가능성을 ‘헛된 망상’ 등으로 폄하한 바 있다.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측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사실부터 밝힌다면 무근거한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 조작 놀음"이라며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 확성기 철거를 대북 유화정책의 가시적 성과로 홍보하려던 당국을 머쓱하게 한 것이다. 더불어 정부와 군의 대북 판단력까지 불신을 받게 됐다.
이 대통령의 ‘북한 대남 확성기 철거’ 발언과 관련한 저간의 사정은 다음과 같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9일 우리의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에 호응해 북한도 일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 정보를 토대로 나왔다. 하지만 군이 식별했다는 철거 움직임은 전체 40여 대 가운데 1~2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종합적인 분석과 평가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라는 성급한 결론과 함께 이를 공개했고, 대통령 발언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김여정은 이를 일축하면서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번 ‘북한, 대남 확성기 철거 발표’ 해프닝과 관련해 떠오른 또 하나의 해프닝은 4년 전인 2021년에 있었다. 남북한 당국은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에 통신 연락선을 복원했다. 북한 당국이 2020년 6월 9일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시비하면서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차단한 지 413일 만이다.
이와 관련, 당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가뭄 깊은 대지에 소나기 소리처럼 시원한 소식이다. 격하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통신선 복원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도달, 비핵화를 위한 징검다리"라고 달콤한 전망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처음부터 약효 없었음’만을 증명한 채 철저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김씨 정권의 본질을 간과한 채 일방적인 수읽기로 대북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 ‘다모클레스의 검’은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과 특히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유화정책도 흡수통일을 위한 기만전술일 뿐이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인권 탄압과 핵능력 강화다. 김정은으로서는 정권 유지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전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남 확성기 일부 철거를 확대해석해서 김정은의 변화로 연계하려 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전형적인 자메뷰(jamais vu, 미시감) 현상이다. 안보는 근거 없는 낙관이나 고조된 감정만으로는 담보할 수 없다. 뱀처럼 냉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