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과 함께 걸어온 20년...여명학교 교장의 믿음의 여정

조명숙 교장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 때, 상처가 치유됩니다” 빈민촌 소녀에서 탈북 청소년 ‘영적 어머니’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다”는 말씀으로 시작된 사명 목숨 건 국경 사역과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하심 통일의 일꾼을 키우는 ‘여명학교’의 탄생와 성장

2025-08-11     곽성규 기자
지난 4일 방송된 CBS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여명학교 조명숙 교장. /유튜브 영상 캡처

서울의 한 건물, 그곳에서 20년 넘게 탈북 청소년들을 품어온 학교가 있다. 2004년 설립된 ‘여명학교’. 이곳을 세운 조명숙 교장은 지난 4일 방송된 CBS 간증 프로그램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해 학교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명은 새벽이 오기 직전,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북한에서 탈출해 오기 전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고, 통일을 기다리는 지금이 가장 어두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명을 준비하는 학교가 되고자 했습니다.”

여명학교는 단순한 학력 보완 기관이 아니다. 북한과 제3국에서 온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신앙 공동체’다.

조 교장의 믿음 여정은 어린 시절 빈민촌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그곳에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있는 이웃들과 함께 자랐다. 그중 유독 따뜻한 눈빛을 가진 한 노인이 있었다. 훗날 알게 된 그의 이름은 바로 시인 천상병이었다.

“다른 어른들은 시끄럽다며 혼을 내거나 나쁘게 대했지만, 그분은 우리를 품어 주셨어요. 그 눈빛이 달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죠. 그건 하나님께 푹 젖어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눈빛이라는 걸요.”

고등학교 시절 미션스쿨을 다니던 조 교장은 목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의 전환점은 대학교 3학년 버스정류장에서였다. 그곳에서 본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이 그녀의 마음을 강타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죠.”

한 달 후,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번호를 잘못 누른 외국인 노동자의 긴급 요청이었다. 그 전화는 그녀를 외국인 노동자 사역으로 이끌었고, 첫 번째 산업재해 사망 사건까지 함께 해결하게 만들었다.

그 후 조 교장은 병원에서 다친 노동자를 돌보고, 임금체불·폭행·여권 압류 등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법률 봉사자로 참여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며, 신혼여행 중 새로운 부르심이 찾아왔다.

중국에서 만난 한 탈북 소녀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열여섯 살이었지만 키 120cm 남짓, 영양실조로 부푼 배, 계란 하나를 숨기며 먹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가 동생들을 살리겠다며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어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탈북 청소년을 보내주시면, 통일의 보이지 않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조 교장은 이후 베트남 국경에서 13명의 탈북자(아기, 임산부, 노인 포함)를 넘기는 사역에 참여했다. 그녀의 임무는 국경 수비대의 시선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뢰밭을 향해 달리다 군인에게 붙잡혔다.

“군인에게 끌려가면서 하나님이 탈북자만 사랑하시고 저를 희생시키는 분이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결국 돈 20달러를 주고 풀려났고, 한 명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사역 중에도 개인적인 위기는 있었다. 어린 아들이 간 수치 850이라는 치명적 상태로 쓰러졌고, 딸은 임신 중 호흡이 멈췄다. 두 번 모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때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제 자녀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우겠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조 교장은 여명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를 ‘정체성 회복’이라 강조한다.

“우리 아이들은 탈북민, 언어 미숙, 차별 등으로 자신을 이등 시민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 때, 진정한 위로를 받습니다.”

그 결과, 과거 술과 싸움에 휘말리던 학생이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난과 사회적 편견, 그리고 지역 주민의 반대로 학교 이전은 여전히 큰 숙제다.

조 교장은 방송 말미에 여명학교의 기도 제목을 이렇게 전했다.

“아이들을 안정감 있게 키울 수 있는 새 보금자리가 필요합니다. 이 아이들은 남과 북을 이해하는 통일의 다리가 될 것입니다. 지역 주민과 교회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사역에는 명예도, 물질적 이익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이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도 여명의 빛을 비추고 있다.

조명숙 교장의 삶은 ‘잘못 걸린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사명 이야기다. 빈민촌 소녀였던 그녀는, 하나님의 눈빛을 기억하며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 청소년을 위해 인생을 드렸다. 위험한 국경에서조차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고, 자녀를 살리신 은혜에 응답하며 지금도 통일의 일꾼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