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보수를
국민의힘 전당대회 레이스가 시작됐다. 뜨겁게 달아올라야 하지만, 탄핵 정국 이후 대선 패배가 이어지다보니 보수 지지층 내부의 갈등만 달아오르는 듯하다.
일부 강성 지지층은 "통합"을 외치는 김문수 후보를 향해 배신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대선 결과에 승복했다는 이유로, 부정선거에 맞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김문수가 설령 보수의 원로일지라도, ‘싸우지 않는 보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싸늘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반면 장동혁 후보는 지지층의 ‘코드’를 빠르게 읽고,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보수층이 느낀 분노와 상처를 치유하는 데 그의 발언은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과거다. 장동혁은 한동훈계의 1등 공신이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직전까지 한동훈계 좌장이었으며, 김건희 여사에 대한 좌파들의 공격에 합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방어하지 못하게 한 주역 중 하나였다. 얼마 전부터 노선을 틀었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건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하다.
장동혁은 보궐로 초선 의원이 됐고, 한동훈계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 외에는 정치적 중량감을 입증할 별다른 이력이 없다. 그런 그가 ‘최후의 보루’인 내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보수 진영 전체에 대한 모험일 수밖에 없다.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입법권·행정권에 이어 사법부까지 거의 장악한 듯한 더불어민주당이, 마지막 남은 지방 권력마저 장악하려는 절체절명의 승부다. 이 싸움에서 또다시 국민의힘이 중도·수도권·청년을 바라보며 실험하거나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 결과는 국민의힘 패배가 아닌 자유대한민국의 완전한 몰락이 될 것이다.
한때, 민주당에서 이탈한 이언주를 ‘보수의 여전사’라 칭송하며 전폭 지지한 적이 있다. 속 시원한 투쟁력에 열광했고, 거리 투쟁의 선봉에서 삭발까지 감행한 이언주를 보수 진영의 희망처럼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이언주는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 최고위원을 하고 있다.
이준석·한동훈 등 지지층의 애정과 신뢰를 배신으로 되갚은 사례는 이미 충분하다. 장동혁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걷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가능성에 눈감고 미래를 맡길 만큼 지금의 정국이 여유롭지 않다.
보수주의 원칙 중 하나는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망각한 보수는 늘 배신당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힘들고 외로워도 옳은 길을 걸어왔던 ‘과거 행적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