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방차관 "韓, 대북방어 주도·방위비 지출의 롤모델 될 것"

2025-08-06     정수현 기자
콜비 미 국방차관. /연합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을 주도하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이 대북 방어와 국방비 지출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을 내놔 눈길을 끈다.

엘브리지 콜비 차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이뤄진 한미 국방장관 통화 직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것과 국방비 지출에서 계속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콜비 차관의 이 발언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주요 협상 의제를 사전에 제시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 변화, 중국 견제에 대한 기여 등 민감한 사안들을 정상회담 의제로 포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콜비 차관이 언급한 ‘북한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은 그간 대북 억제에 집중했던 주한미군의 역할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구상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의 역할 중 일부를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옮긴다면,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막는 책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국방비 지출’은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국방 예산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와 직결된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나토가 행동에 나선 만큼, 아시아도 예외일 수 없다"고 발언하는 등 미국의 국방비 인상 요구는 크게 선명해진 상황이다.

콜비 차관은 엑스에서 "한미 양국은 지역 안보 환경에 대응해 동맹을 현대화할 필요성에 대해 긴밀하게 연계하고 있다"며 "우리는 공동의 위협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는, 전략적으로 지속가능한 동맹을 만들기 위해 계속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동맹의 현대화’ ‘공동의 위협 방어’ 등 발언은 미국의 최대 경쟁 상대인 중국을 억제하는데 한국이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된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이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대응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마련한 ‘임시 국방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국방 과제로 삼으면서, 북한과 이란 등 다른 위협 요인에 대한 대응은 동맹국들이 맡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많은 국방·외교 관계자들은 콜비 차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요구사항을 이미 한국이 받아들였다는 취지로 해석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요구가 협상 대상이 아니라 수용 대상이라는 고강도 압박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전략 및 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던 콜비 차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국방정책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맹의 현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 재조정을 시도하는 이재명 정부로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 확대나 대중 견제 참여 확대라는 미국의 요구가 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한미, 한중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