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는 진보 삶은 보수…4050세대의 패착
최근 이동통신 3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이 단행되고 있다. 특히 KT는 중간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 무려 2800명이 그만뒀다. 공교롭게도 상당수가 4050세대, 소위 ‘영포티’, ‘영피프티’로 불리는 세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기도 하다. 정치적 지지와 온라인 여론 주도, 적극적 투표 참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냉정한 ‘해고 통지서’다. 더 큰 문제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이며, 그들이 최우선 타겟이라는 점이다.
왜 그들은 이재명 정부를 지지했을까? 단순한 진보 성향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이 세대는 민주화 이후의 교육과 소비문화, 부동산 상승, 선진국 진입 등의 한복판을 거치며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됐다. 진보적 소비자이자 보수적 생존자라는 이중적 얼굴이다.
정치사회학자 최장집 교수는 4050세대가 중심인 한국 중산층이 지닌 문화적 진보성과 경제적 보수성의 괴리를 지적했다. 이들은 평등과 공정, 다양성엔 민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산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는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포티, 영피프티는 재벌 개혁을 외치며 현 경제구조에 강한 반감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중산층 지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 워라밸은 추구하면서도 연봉은 많이 받길 원한다. 소위 내로남불이 강하다.
이러한 감정은 ‘강한 국가’, ‘공정한 리더’, ‘불평등의 교정자’ 이미지를 연출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캐릭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가 보여준 투쟁성과 반엘리트주의, ‘기본’ 시리즈 정책은 마치 자기편이 되어줄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지지가 구체적 정책의 실체를 묻지 않은 채 정서적 코드에만 머물렀다는 데 있다.
이 세대는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택했지만, 삶의 기반은 철저히 보수적이었다. 자녀 사교육, 부동산 투자, 대기업 지향의 직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도, 국가가 모든 걸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기루 같은 기대를 품었다. 그 모순은 지금 드러나고 있다. 정책은 시장을 위축시켰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칼날이 지지층의 삶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지했던 이 정부는 왜 우리부터 내쳤는가?" 실직을 걱정하는 4050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창출한다. 구조조정은 숫자를 보고 결정되는데, 그 숫자엔 정치적 이념도 충성도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율배반은 정치의 특성이지만, 삶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실수다. 진보적 감정을 원했어도, 보수적 현실 인식이 더욱 필요했다. 지금이라도 선동보다 성과, 분배보다 성장, 적폐청산보다 일자리 창출을 외치길 바란다. 더는 감정적 지지가 구조적 실패로 돌아오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