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정치사회학] 데이터 주권 넘어가면 국민과 국가가 넘어간다

2025-08-05     이윤선 한국미래회의 공동의장
이윤선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유전체 분석 기업 ‘노보진’이 지난 6월 전액 출자 자회사로 국내에 노보진 코리아를 설립했다고 5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노보진은 유전체 분석 역량 기준으로는 세계 5위 회사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들이 다루는 유전체가 한국인의 생체 정보라는 점이다. 이 생체 정보가 유출될 경우 좁게는 한국인의 유전적 취약점을 파악해 신약을 먼저 내놓을 수도 있고, 더 넓게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데이터 주권이 일정부분 넘어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핵심 자원이다. 데이터 주권이라는 개념은 개인·조직·국가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 행사하는 것이다. 데이터 주권은 AI 시대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개인의 권리 보호, 국가 안보 강화, 경제적 가치의 공정한 분배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술 발전과 함께 데이터 주권의 개념과 적용 방식도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AI 문명 전환기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데이터 주권이 중요한 개념으로 부각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개인의 일상생활, 기업의 운영, 정부의 정책 등 모든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러한 데이터가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데이터의 소유권과 통제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으로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다른 국가에 저장되는 상황이 일반화되면서, 국경을 넘는 데이터 이동에 관한 법적·정치적 문제도 발생했다. 이는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 보호를 위한 데이터 주권 강화로 이어졌다.

데이터 주권은 크게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 데이터 주권은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가지는 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을 의미한다.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저장·처리·공유되는지 알 권리와 데이터 수집 및 활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 그리고 자신의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리(잊혀질 권리)와 데이터를 다른 서비스로 이전할 수 있는 권리(데이터 이동성)가 포함된다. 이러한 개인 데이터 주권은 유럽연합의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과 같은 법적 프레임워크를 통해 보장되며, 기업이 그 데이터를 활용할 때 그 투명성과 책임을 요구받는다.

국가 데이터 주권은 국가가 자국 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나 자국민의 데이터에 대해 행사하는 통제권과 관할권을 말한다. 이는 데이터 현지화(Data Localization) 정책, 국가 안보를 위한 데이터 접근 통제, 자국 데이터 산업 보호 및 육성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러시아·중국·인도 등에서는 자국민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 저장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도입했는데, 이는 국가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AI 시스템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소유권과 통제권은 AI 발전 방향과 그 혜택의 분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국가 간 AI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미국·중국·유럽연합 등 주요 강대국들은 각자의 데이터 주권 개념과 정책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긴장과 협력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데이터 주권은 이제 국제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이터 주권 실현을 위해서는 개인·기업·국가 간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혁신과 경제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데이터 주권 개념이 발전해 나가야 한다. 또 국제적 협력을 통해 데이터 주권에 관한 공통의 기준과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긴요한 과제다. 데이터 주권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정책 수립은 AI 시대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다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