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廣場] 관세 후폭풍, 세계 각국 미국과 이별할 결심
한미 무역협상이 지난 7월 31일 타결됐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이로써 트럼프가 예고한 상호관세 발효일인 8월 1일 현재 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일본·필리핀·한국·태국·캄보디아 등 8개국과 EU가 미국과 협상을 타결했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상호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트럼프는 "관세 덕분에 미국이 다시 위대하고 부유해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 중심의 통상질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파괴적인 무역정책으로 불안해진 많은 국가들이 미국시장을 피해 새로운 무역파트너를 찾아나서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걸프협력회의(GCC: 사우디·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바레인·오만 등 6개국)은 지난 5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의 참석하에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의 불가측성과 변덕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3자간 자유무역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초거대 단일시장을 갖고 있는 EU는 글로벌 무역체제 재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U는 5월 UAE 등 중동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 체결협상을 개시하고 남미경제공동체인 MERCOSUR(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 6개국)과도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이 협정은 2024년 12월 체결됐으나 환경 문제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프랑스·폴란드 등 일부 국가 농민들의 반발로 비준이 지연되어 왔다. 이 협정이 비준되면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거대한 단일시장이 탄생하게 된다.
EU는 미국 관세로 위협받고 있는 국가들에게 글로벌 동반자와 동맹을 결성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6월 우르줄라 펀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아태지역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 협정’(CPTPP)을 예로 들면서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새로운 자유무역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EU 경쟁위원회 위원장 테레사 리베라는 블룸버그와의 회견에서 "EU는 트럼프가 관세 등 일방적 조치로 바꾸어 놓은 글로벌 무역체제를 정비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태평양 지역국가들과 제휴를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EU는 7월 도쿄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간 정상회의를 갖고 경제 안보와 산업 강화를 위해 포괄적으로 협력하는 ‘경쟁력 동맹’ 출범에 합의했다. 영국 또한 7월 인도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으로부터 35% 상호관세 서한을 받아든 캐나다도 미국 의존도 낮추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는 트럼프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에콰도르와 자유무역협정을, UAE와는 투자촉진협정을 체결하는 등 탈(脫)미국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50% 관세 폭탄을 맞은 브라질도 인도와의 교역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의존 탈피를 위해 무역 다각화를 적극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EU를 비롯한 전 세계 나라들은 미국 없는 새로운 글로벌 무역블럭 조성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의 이별을 준비 중인 것이다. 앨런 월프 전 WTO 부총장은 "트럼프의 관세폭격으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무역체제의 리더가 아니다. 이제 미국 중심 글로벌 통상질서는 끝나고 미국을 제외한 새로운 글로벌 무역체제가 건설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수립해 약 80여 년간 유지되어 온 규칙기반의 글로벌 경제질서와 WTO 체제의 자유주의 무역질서가 붕괴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주도 규칙 기반 무역질서에 힘입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