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거둔 이종석의 국정원, 방패는?

2025-07-31     장석광 범죄학 박사·JK 포렌식 인텔리전스 대표
장석광

<한비자>에 나오는 중국 고사 ‘모순’(矛盾)은 현대 정보기관의 이중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 속 무기 장수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과 가장 단단한 방패를 동시에 자랑하다가,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만다.

정보기관의 본질은 이처럼 ‘창과 방패’라는 이중적 정체성에 있다. 정보기관은 외부의 위협을 사전에 감지해서 선제적으로 공격하는 ‘창’의 역할, 때론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방패’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창과 방패는 종종 충돌하거나 긴장을 일으키지만, 정보기관은 늘 두 기능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로고에 방패와 검이 교차해 있고, 중국 국가안전부(MSS)의 상징에 창과 방패가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취임 직후인 7월 초, 국정원이 대북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정부는 ‘북한이 먼저 대남 방송을 중단한 데 대응한 상응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그 실질적 함의는 그보다 훨씬 깊다. 북한이 2023년 12월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해온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심리전 수단인 대북 방송을 중단한 것은 북한의 정체성 인식을 현실적으로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7월 28일 담화를 통해 "이재명 정부가 수선을 떨어도 조한(朝 韓) 관계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대북 방송 중단을 "평가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여정은 국정원의 조치를 냉소적으로 평가하며, 남한 정부 결정을 일종의 ‘정치적 승리’로 해석했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남북관계를 경쟁과 적대의 틀 속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직후인 7월 초, 국정원은 대북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연합

정보기관은 창과 방패로 균형을 유지한다. 이종석 국정원장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대북 방송이라는 ‘공세적 수단(창)’을 자발적으로 중단했다. 이제 그에 상응하는 ‘방어적 수단(방패)’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약속했던 국정원의 조사권 보완과 간첩죄 관련 법 개정이 바로 그것이다. 공세와 방어, 창과 방패 두 축의 균형은 남북관계 안정뿐 아니라 국내 안보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게 만만치 않다. 창을 완전히 포기하면 심리전·정보전에서의 전략적 후퇴가 불가피하다. 방패를 강화하는 조치들은 과거 국정원 수사권 폐지를 주도했던 여권 내부의 이견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창을 거두고도 방패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국정원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방어 능력이 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 수단만 철회하면, 안보의 취약성은 가중되고 정책은 실패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종석 국정원은 대북 방송 중단을 일시적 유보 조치로 규정해야 한다. 이는 ‘영구 폐기’가 아니라 ‘필요 시 재가동 가능한 전략적 수단’임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동시에 조사권 보완과 간첩법 개정은 투명성과 견제 장치를 전제로, 신속하고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종석 원장은 학자 출신으로 논리적 사고와 정책 설계에 강점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 출신 정치인들이 현실 정치를 자신의 학문적 이론을 실험하는 장으로 삼아온 전례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퇴임 후 학계 복귀라는 안전망은 그들의 정책 결정에서 정치적 절박함이나 책임감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지적도 있다. 청문회를 통해 이 원장에 대한 일부 우려는 해소됐지만, 그가 공언했던 약속들이 실제 정책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