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라면서 때늦은 국민임명식이 웬말?
말로라도 ‘실용주의’를 내세웠다면 기존의 불필요한 행사를 없애지는 못할망정 명분도 없는 기묘한 이벤트를 추가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국민임명식’을 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광복절 행사 후 광화문에서 국민이 직접 낭독하는 "이 대통령을 나의 대통령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식을 연다고 밝혔다. 임기 시작 두 달이 지나서 취임 행사를 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이벤트를 굳이 강행하는 배경은 짐작이 간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부랴부랴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취임 당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5부 요인과 국회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식으로 취임선서만 했다. 그 서운함을 80주년 광복절 행사라는 후광을 빌려서라도 해소하고 싶은 것 아닌가.
정무수석이 행사를 총괄하며 추진단에 행정안전부와 외교부를 비롯한 범부처가 참여하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정무수석실뿐 아니라 홍보수석실, 의전비서관실 등 전 부서가 투입된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눈부신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기존의 대한민국은 가짜라는 얘기인가? 적지 않은 국민이 이런 의구심을 가졌다. 이번 국민임명식은 그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국가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광복절에 국민임명식을 한다는 발상에 레짐체인지의 의도를 읽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광복절 행사와 대통령 임명식이 겹치면 원래 이날의 주인공인 광복절의 의미는 퇴색되고 대통령의 존재만 부각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를 이 대통령 경축식의 병풍으로 세우겠다는 뜻"이라며 "너무도 가볍고 낯 뜨거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광복절과 이 대통령 임명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이 대통령이 독립운동이라도 했느냐"고 질타했다.
이런 행사에 쏟을 인력과 예산, 시간이 있다면 관세협정 등 긴박한 국정 현안을 더 챙겨야 한다. 그것이 야당 지지자들에게도 대통령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다. 실용주의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