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뉴욕→스코틀랜드→워싱턴...눈물겨운 '관세협상 투혼'

2025-07-29     채수종 기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 장관이 러트닉 장관의 일정에 맞춰 지구촌 ‘이동 면담’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점으로 예고한 8월 1일(현지시간)을 앞두고, 한·미 무역협상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측 핵심 인사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동선에 맞춰 ‘이동 면담’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과 미국과 산업·통상·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 협상을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김 장관의 치밀하면서도 끈질긴 노력이 돋보인다.

한·미 관세 협상의 ‘키맨’ 역할을 하는 러트닉 장관은 2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방금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왔다"고 밝혀 이미 워싱턴DC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장관도 29일 추가 협상을 위해 워싱턴DC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산업장관은 이르면 29일 워싱턴DC에서 다시 만나 한국 측의 진전된 수정 제안을 바탕으로 협상 타결을 도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김 장관은 지난 23일 출국 이후 러트닉 장관과 4번째 협상에 나서게 된다. 앞서 지난 24∼25일 러트닉 장관을 만나 2차례 협상을 했다. 24일에는 워싱턴DC에서 만났고, 25일에는 그의 뉴욕 자택까지 찾아가 협상을 이어갔다. 이어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영국 스코틀랜드로 떠난다는 것을 파악한 뒤 급박하게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관세 부과 유예 시한이 코앞에 닥친 만큼 협상 불씨를 계속 살려 나가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러트닉 장관은 2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저녁 식사 후 나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사전에 미국 측과 협의 하에 스코틀랜드행 일정을 잡았는데, 이는 미국 측 역시 8월 1일로 예고된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 교역 대상국 중 하나인 한국과 협상 타결에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김 장관이 스코틀랜드에서 러트닉 장관과 만나 얼마나 이견을 좁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한·미 관세 협상은 정부를 대표해 김 장관이 협상 전면에 나선 가운데 미국 측과 매차례 협상 이후 대통령실의 새로운 훈령을 바탕으로 미국과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 장관은 관세 부과 유예 시한이 끝나기 전까지 러트닉 장관을 최대한 많이 만나 양측 간 이견을 절충하는 협상을 이어갈 방침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오는 31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의 막판 ‘1대1 통상협의’에서 보다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사전 미팅을 이어가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의 무역협상 환경은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보다 대미 무역 규모가 큰 일본·EU가 잇따라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면서 기존(일본 25%, EU 30%)보다 낮은 15%의 관세율로 협상을 타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 EU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에 대해서도 15% 관세를 일괄 적용받기로 한 점은 한국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라는 대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것도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이 한국에 4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요구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국은 미국과의 조선 협력을 주요 지렛대로 삼아 협상에 임한다는 전략이다. 앞서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의 지난 25일 뉴욕 자택 협상에서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고 이름 붙인 수십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해 긍정적 반응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