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이름 쓰면 스마트폰에 뜬다...생각 감지하는 '손목밴드'

메타, 손 제스처로 컴퓨터 제어 'AI 신기술' 공개

2025-07-28     이태현 공학박사

지난 23일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에서 의미있는 프로토타입을 발표했다. 보기에는 그냥 일반적인 손목밴드일 뿐이다. 메타의 발표에 의하면, 거대한 직사각형 손목시계처럼 보이는 이것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 시연에서는 손목을 살짝 돌리면 노트북 화면에 커서가 나타나고, 엄지와 검지를 맞대면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앱을 열었다. 연필을 쥔 듯한 제스처로 허공에 이름을 쓰면 스마트폰에 글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좀더 익숙해지면 손가락 움직임 없이 움직이려는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뇌에 칩 이식 수술 대신 손목밴드를 선택지로 내놓은 메타.

근전도 기술로 근육의 전기신호 수집

23일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서 메타는 이 기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메타의 손목밴드는 근전도(EMG)라는 기술을 사용해 팔 근육에 맥박처럼 흐르는 전기신호를 수집한다.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서 생각을 한다. 그러면 뇌가 운동 명령을 근육에 전기신호 형태로 보낸다. 이 신호는 척수에 있는 알파 운동 뉴런(α-motor neuron)에 의해 생성되며, 이 뉴런들은 개별 근섬유에 연결된다. 뉴런들은 근섬유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신호가 매우 강해서 피부 밖에서도 읽을 수 있다. 메타 연구진이 개발한 손목밴드는 팔 근육에서 흐르는 이 전기신호를 읽는다.

근전도(EMG)는 오랫동안 팔 절단 환자들이 의수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척수 손상 같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적어도 일부 근섬유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신체가 실제로는 할 수 없더라도 뇌가 하려는 일을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메타의 손목밴드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의도를 파악한다. 익숙해질 만큼 손목밴드를 충분히 오랫동안 사용하면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도 아주 적은 수의 근섬유가 활성화 되는 것을 읽어낸다. 신호는 근육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여서 손목밴드는 손가락이 움직이기도 전에 전기신호를 읽어낼 수 있다.

메타 밴드를 착용하면 손가락 움직임만으로도 노트북 커서를 움직이거나 앱을 열 수 있다. /메타 랩스

장애인들에게 칩 이식 대신한 선택지

일반적으로 이런 뇌 신호를 캐치하기 위해서는 신체에 작은 장치를 외과적으로 이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장치 이식은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없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움직일 방법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위험한 시술이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뇌 옆 두개골 아래에 칩을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호주 신경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싱크론은 목 혈관 안에 장치를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 다 뇌 활동을 직접 판독하는 것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메타는 간단하다. 수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누구나 기기를 착용하면 된다. 메타의 손목밴드는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다. 카네기-멜론대 연구원들은 척수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 손목밴드를 시험하고 있으며, 팔이나 손을 완전히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더글러스 웨버 카네기-멜론대 기계공학·신경과학과 교수는 "행동 전에 이미 움직이려는 의도를 읽는 방식이므로 손가락이 절단됐거나 근력 약화, 팔다리 마비를 가진 환자들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의 네모난 장치는 연산작용 하는 컴퓨터가 들어있는 보관함이고 아래 금속 핀들은 근섬유의 전기신호를 정밀하게 읽어들이는 장치다.

AI를 이용 방대한 데이터 수집

"이런 아이디어, 이런 종류의 기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된 것"이라고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다리오 파리나 생명공학 교수는 설명했다. "획기적인 점은 메타가 인공지능을 사용해 수천 명으로부터 얻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 기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메타는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연구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 명의 캐나다 기업가가 탈믹 랩스(Thalmic Lab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탈믹 랩스는 손동작을 사용해 간단한 컴퓨터 명령을 전송하는 미요(Myo)라는 암밴드를 개발했다. 예를 들면 손을 스와이프해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에서 새 슬라이드로 전환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탈믹 랩스는 사업에 실패하며, 몇 년 후 해당 제품을 단종시켰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 브라우저 창시자인 토머스 리어든(Thomas Reardon) 박사가 비슷한 연구를 했다. 그는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에서 만난 신경과학자 두 명과 함께 컨트롤 랩스(Ctrl Labs)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유사한 연구를 시작했다. 2019년 이 스타트업은 메타에 인수되어 리얼리티 랩스(Reality Labs)라는 연구 조직에서 운영되고 있다.

리어든 박사와 동료들은 수년간 비공개적으로 밴드의 기술을 시연해 오다가, 비로소 시장에 출시할 만큼 충분히 완성됐다고 여겨 이번에 연구 결과를 공유한 것이다.

연구팀은 AI 기술을 사용해 사람이 손가락, 손목 또는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전기신호를 식별했다. AI를 활용해 근전도 신호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팀은 프로토타입 테스트에 동의한 1만 명으로부터 신호를 수집했다. 수집한 신호를 챗GPT 구동과 동일한 종류의 AI 머신러닝 시스템인 ‘뉴럴 네트워크’를 사용해 공통 패턴을 식별했다. 이후 패턴을 분석해 데이터가 전혀 없는 새로운 사용자가 기기를 사용할 때도 손쉽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향후 몇 년 내 대중화 가능성

메타는 향후 몇 년 안에 이 기술을 제품에 접목할 계획이다. 메타의 손목밴드는 착용자가 기기를 만지지 않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한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노트북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기와 더 간편하고 빠르며 불편하지 않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을 대체할 새로운 디지털 기기를 개발하는 것까지 목표로 한다.

메타는 이를 위해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1968년에 처음 개발된 마우스가 대중화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다. 이 기술이 널리 사용되는 데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메타 연구팀 토머스 리어든 박사
메타 밴드 연구를 이끈 토머스 리어든 박사. 

메타의 손목밴드를 착용하고 조금만 연습하면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노트북 커서를 움직일 수 있다. 뇌의 생각이 팔뚝 근육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메타 연구 부사장 토마스 리어든 박사는 인터뷰에서 "실제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냥 움직이려는 의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기기가 당신의 마음을 읽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냥 당신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보는 것이다. 우리는 뉴런 하나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신경계의 원자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