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갑질 피해자의 서글픈 갑질 옹호

2025-07-20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박사
서민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시를 받았던 보좌진이 녹음을 했다는 것이고, 이는 부당한 지시임을 인지하고 추후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끔 증거를 남겨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부분은 해명이나 반박보다는 사과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시사프로 앵커의 질문에 민주당 패널이 반박한다. "검증 단계에 있는 수준이고, 명확한 사실로 규정된 바는 없습니다." 녹취록이 있음에도 사실로 규정된 바가 없다는 이 패널, 그는 이런 말도 한다. "마녀사냥식으로, 검증이나 청문절차를 통해서 저희가 검증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저도 갑질 피해의 전국적인 인물 중 한 사람 아니겠습니까?"라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 패널이 다름아닌 박창진 민주당 부대변인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그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조현아’ 혹은 ‘땅콩회항’이라고 하면 기억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14년 12월에 발생한 ‘땅콩회항’은 대한항공 오너의 딸이자 부회장이란 직함을 가진 조현아가 여성 승무원의 견과류 제공 서비스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작됐다.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땅콩을 제공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 물론 이건 조현아가 제로도 알지 못한 처사였다. 사무장인 박창진이 태블릿PC를 가져와 승객 대응 매뉴얼을 보여줬지만, 조현아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출발을 앞두고 있던 비행기에서 박창진을 내리게 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조현아의 평상시 안하무인 격인 행적이 언론보도를 통해 쏟아져 나오면서, 그녀는 일약 ‘국민마녀’의 반열에 오른다. 그와 더불어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에 대해 동정여론이 들끓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건 이후 그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와 "밤에 잠을 못 이루고 환청에 시달"려 병가를 계속 연장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갑질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90일의 병가를 다 썼음에도 박창진은 "사건 이후 신경증, 적응장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산재 신청을 해 승인받았고, 6개월의 산재기간이 끝나고도 두 차례 연장 신청을 하며 총 435일을 쉰다.

그럼에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자 박창진은 법적인 구제를 받고자 한다. 각하당하긴 했지만 500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미국 법원에 냈고, 대한항공에 복귀한 뒤엔 "부당하게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국내 법원에 부당노동행위 소송을 제기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상대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등을 요구하며 각각 2억 원,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함께 청구한 바 있다.

그 과정 또한 박창진에게 힘든 나날이었던 것 같다. 2018년 3월 공개한 사진에는 뒷머리에 커다란 종양이 생겨 있었으니 말이다. "핵폭탄 같은 스트레스로 지난 3년간 생긴 머리 양성 종양"이라는 게 그의 설명. 결국 박창진은 2020년 1월 31일 "저는 싸움터를 옮길 뿐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대한항공을 퇴사하며 정치권에 들어갔고, 정의당을 거쳐 지금은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활약 중이다.

그의 이력을 자세히 나열한 이유는, 갑질이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 악질적인 행위라는 것을 그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어서다. 많은 국민이 그를 응원한 이유는 그가 갑질의 근절에 누구보다 더 앞장서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서였을 터.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게 갑질녀 강선우를 옹호하는 것이라니, 기가 막힌다.

심지어 강선우가 보좌관을 공항보호구역까지 불러 짐을 들게 한 건 괜찮은 거냐는 질문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밑밥을 깐 뒤 "고위관료나 기업가들이 비서진을 게이트 앞까지 수행하게끔 하는 사례가 있다. 허가가 있으면 가능한 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강선우가 그렇게 했다는 건) 사실로 확인된 바가 없다"며 변명을 해줬다.

피해를 입은 보좌관이 한 명도 참고인, 증인으로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그걸 다 방기한 게 국민의힘 아니냐? 이걸 방기하면서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게 뉴노멀이다"라며 뒤집어씌우기까지 선보였다. 박창진은 입당 후 1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민주당 스탠다드에 맞는 정치인이 된 것 같다. 지금의 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하지만 박창진은 빵만으로 살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