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킹스'(King of Kings)] '진정한 왕' 예수님 만나러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
K-애니메이션 흥행 새 역사
예수님의 일생을 한 아이의 눈으로 근접거리에서 바라보는 한국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King of Kings)가 드디어 국내 개봉일을 확정지었다. ‘드디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 등 해외에서 이미 대단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의 ‘기생충’을 뛰어넘는 흥행을 일으켰다. 금의환향한 영화, K-애니메이션 위용을 널리 알린 ‘킹 오브 킹스’다.
2000년 성서 속으로 타임슬립
‘킹 오브 킹스’는 2000년 전 성서 속 예수 이야기를 한국적 감성과 스타일로 재해석한 독창적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올리버 트위스트’ 등 명작을 남긴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쓴 ‘우리 주님의 생애’를 모티브로 한다. 디킨스는 출판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이야기책을 썼다.
영화 속에서 디킨스는 아서왕을 좋아하는 말괄량이 막내아들 월터에게 진정한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다. 월터는 아버지 이야기를 따라 2000년 전 예수가 태어났던 해로 타임 슬립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예수의 탄생, 그의 겸손함과 사랑·희생에 이르는 여정을 지켜보면서 월터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변화와 힘을 알게 된다.
관객은 아버지와 아들 시선을 따라가며 예수 탄생부터 수많은 기적들, 십자가 위에서의 고난과 희생의 순간들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특히 5000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 갈릴리 바다 위를 걷는 장면, 최후의 만찬 등 성경의 대표적인 순간들이 애니메이션 기술을 빌려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10년 동안 이 영화 각본을 쓰고 마침내 연출한 장성호 감독은 "교회 가보지 않고 성경 한 번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톱스타 더빙…국내는 이병헌
빼어난 시나리오에 매료된 할리우드 스타들이 더빙에 대거 참여한 것도 화제성을 높였다. 디즈니에서 16년 일한 제이미 토마슨이 캐스팅 디렉터로 참여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찰스 디킨스는 케네스 브레너가 맡았다. 브레너는 "내가 시나리오를 썼어도 이렇게 잘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극찬하며 "인류애와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로 전해 온 작품에 목소리를 더할 수 있다는 건 큰 영광"이라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영국 출신 브레너는 셰익스피어극 전문 배우 겸 감독으로 ‘벨파스트’(2022)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브레너가 합류했다는 소식에 다른 배우들도 "브레너의 안목을 믿는다"며 캐스팅을 수락했다. 예수를 맡은 오스카 아이삭은 "영화 속 용서와 사랑, 희생의 메시지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다. 큰 책임을 느끼며 참여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디킨스의 아내 캐서린과 마리아는 우마 서먼, 빌라도는 007시리즈 피어스 브로스넌, 베드로는 포레스트 휘태커, 헤롯왕은 마크 해밀이 각각 연기했다. 이들은 모두 평소보다 낮은 개런티를 제안받고도 개인의 신념,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톱 배우 캐스팅은 국내로도 이어진다. 찰스 디킨스 이병헌, 예수 진선규, 캐서린과 마리아는 이하늬, 베드로 양동근, 빌라도 차인표, 헤롯 권오중, 그리고 장광이 대제사장을 맡는다. 월터 역을 맡은 성우 최하리는 공개 오디션에서 무려 500대 1 경쟁을 뚫고 최종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효과 제작만 10년 걸려
영화는 특수효과 제작 과정만 10년이 걸렸다. 장성호 감독이 대표로 있는 모팩 스튜디오는 한국 영화계 시각특수효과(VFX) 1세대이자 영화 ‘JSA 공동경비구역’ ‘해운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 수백 편을 작업해온 CG/VFX 전문 기업이다.
제작진은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창조에 집중했다. 현재 시점의 디킨스 가족은 한국 카툰 스타일로, 성서 시대 인물들은 예수 직업이 목수였다는 점에 착안해 목각인형처럼 정제된 스타일로 표현했다. 반면 헤롯왕과 대제사장 등은 카툰 스타일로 구성해 시각적 대비를 부여했다.
장성호 감독은 실사 영화와 같은 퀄리티 구현을 위해 버추얼 프로덕션 시스템과 카메라를 자체 개발했다. 언리얼 엔진 기반의 이 시스템은 배우의 실사 연기를 가상공간에 적용해 실제 촬영과 유사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모든 작업은 디지털 기반으로 진행돼 5차례의 재촬영과 편집, 리뷰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였다.
제작비 360억, 한국 투자자만 고집
처음부터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제작된 이 영화가 부딪힌 가장 큰 난관은 360억 원 제작비였다. 대부분 국내 투자사들은 한국 애니메이션, 특히 종교를 소재로 한 작품이 북미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부했다. 반면 미국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기획안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성호 감독은 창작 주도권과 지적재산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투자만 고수했다. 그는 "작품 완성에 10년이 걸렸는데, 그중 90% 시간을 투자 유치에 매달린 것 같다"고 했다. 결국 270억을 투자 받고 나머지 90억은 장 감독 사비로 충당했다.
사생결단으로 뛰어들어 제작에 성공했지만 종교물,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북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킹 오브 킹스’는 지난 4월 부활절에 맞춰 북미 전역 3200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다. 3일 만에 박스오피스 2위, 17일 만에 누적 수익 5451만 달러(약 740억 원)를 달성했다. 이는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최종 매출액 5384만 달러(약 731억 원)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6000만 달러(약 815억 원) 흥행 수익을 올려 미국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한국 영화가 됐다.
영화는 다양한 대륙 50개국에서 상영 중이며 연말까지 90개국 개봉이 확정됐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인 ‘어벤져스-엔드게임’이 60여개국에서 상영된 것에 비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장 감독은 "인도 파키스탄 등 이슬람교 힌두교 문화권에서도 관심을 갖는다"며 "상영 협의 중인 곳을 포함하면 총 120여개국에서 개봉된다. 영화 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벅차했다. ‘킹 오브 킹스’는 오는 7월 16일 국내 개봉한다.
‘킹 오브 킹스’는 세계 최초로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리얼타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은 에픽 게임스(Epic Games)에서 개발한 실시간 3D 그래픽 게임 엔진으로 원래는 게임 개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영화·애니메이션·건축·가상현실(VR)·자동차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기존 애니메이션 제작은 렌더링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언리얼 엔진은 실시간으로 장면을 구성할 수 있어 제작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여준다. 디즈니·픽사·넷플릭스 등도 언리얼 엔진을 일부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