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형 로봇이 하품하자, 침팬지가 그대로 따라했다

2025-06-07     양철승 기자
안드로이드(A)의 하품하는 모습을 본 침팬지들은 하품을 따라 하거나 잠을 자기 위해 눕는 행동 등을 보였다. 무생물에 의한 ‘하품 전염’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문 캡처

과학자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사람을 흉내 낸 안드로이드의 하품이 침팬지에게 전염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입증된 것이다. 무생물에 의한 ‘하품 전염’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행동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국 시티 세인트 조지 런던대 베아트리스 칼보-메리노 교수팀은 인간 표정을 모방하는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실험에서 안드로이드의 하품이 침팬지에게 전염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침팬지들이 안드로이드 하품을 보고 하품을 하거나 눕는 행동을 보였는데 이는 무생물 모델의 하품이 전염되는 것이 처음 관찰된 것이라며, 하품이 단순히 자동 반응을 유발하기보다 휴식 신호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하품 전염은 한 동물 하품을 보는 것이 다른 개체의 하품을 유발하는 현상으로, 주로 포유류와 일부 어류에서 관찰된다. 하품과 하품 전염의 진화적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을 포함한 일부 동물들은 다른 종으로부터 하품이 전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스페인 모나 재단 영장류 보호소에 있는 10~33세 침팬지 14마리를 대상으로 표정을 모방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사용해 하품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다. 안드로이드의 머리에는 표정을 만드는 근육 역할을 하는 회전 모터 33개가 장착돼 있어 하품을 포함한 다양한 표정을 10초간 유지할 수 있다.

사람 표정을 모방하는 로봇의 하품이 침팬지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무생물에 의한 ‘하품 전염’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티이미지

실험은 각 침팬지에게 안드로이드가 하품하는 모습과 입을 약간 벌린 모습, 입을 다문 모습 등 세 가지 표정을 15분 동안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침팬지당 4차례씩 실험하며 반응을 촬영해 분석했다.

침팬지들은 안드로이드의 다양한 표정에 점진적 방식으로 반응했다. 14마리 중 8마리는 안드로이드의 하품을 보고 하품을 하는 하품 전염 현상을 보였고, 8마리는 눕는 행동을 했으며, 일부는 눕기 전에 침구를 모으는 행동도 했다.

하품 전염 현상은 안드로이드가 하품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났고, 입을 반쯤 벌린 경우에는 하품 반응이 감소했으며, 입을 다문 표정일 때는 하품 전염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침구를 모으고 눕는 행동도 하품 조건에서만 나타났다.

칼보-메리노 교수는 "인공 매개체에 대한 영장류의 하품 반응 연구는 인간을 넘어서 사회적 인지와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이런 학제 간 연구가 심리학, 로보틱스, 동물학 같은 여러 분야의 협력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로봇에 의한 하품 전염 반응의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추가 연구에서 로봇의 다른 행동도 동물에게 전염될 수 있는지 탐색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