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민 대통합의 길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19·20대 대선 투표율을 넘어서는 높은 열기 속에서 치러졌다. 국민적 관심이 그만큼 높았다는 이야기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국민 대다수가 지금 대한민국이 위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새 정부는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국정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2025년 6·3 대선은 1987년 이후 5년마다 실시돼 온 역대 대통령 선거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6·3 대선의 형식적 측면만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다. 하지만 이번 대선의 질적 성격은 ‘시대 교체’임에 분명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으로 운명의 양갈래 길에 서 있다. 국제사회는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경제전과 유럽과 중동의 군사전으로 인해 융합전(mixed war) 성격의 사실상 제3차 대전에 돌입해 있다.
미·중 디커플링으로 시작된 미·중 양국의 경제전은 현재로선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향후 30년간 양국의 갈등과 경쟁이 계속되면서 국제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그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과학·기술·의학 그리고 인문학 분야에 역설적인 변화·발전을 가져왔듯이, 미·중간 경쟁과 갈등이 또 어떤 역설적인 진보 또는 퇴보를 가져올지 알기 어렵다. AI와 로봇산업, 양자컴퓨팅이 결합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이 지구마을에서, 인간 존재의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지금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국내적 상황도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위기, 경제 붕괴의 위기, 대만해협의 위기 속에서 북핵과 중·러에 대응해야 하는 신안보 위기가 한꺼번에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MAGA) 깃발 아래 한미동맹의 앞날도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 등 국가 전 영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재건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기대선은 단순한 ‘대통령의 교체’가 아니라, 매우 분명한 ‘시대 교체’라는 역사적 의미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시대적 요구를 결코 피해갈 수도 없고, 피해 가서도 안 된다.
국가와 사회 모든 개혁의 출발점은 정치 개혁이다. 대통령 당선인도 정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 개혁을 통해 경제 분야의 안정을 회복해가야 한다. 정치가 불안한데 경제가 잘 되는 경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외교안보와 교육·언론 등의 개혁도 정치 개혁이 선행되면서 순차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계와 시장경제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근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80년간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상황에 따라 정책적 유연성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의 체제 근본을 이탈해선 안 된다. 정치 개혁은 바로 이 기준에서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국민 대통합’을 이뤄가야 한다.
다시 말해, 국민 대통합은 확고부동한 자유민주주의 헌법 시스템과 시장경제의 기준에서 현실적 유연성을 획득해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전체주의 독재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나 단체의 정치활동은 헌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주권자 국민의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에 변함이 있을 수 없다.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을 준비하는 과정은 새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이 더 이상 국민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야가 함께 동의한다. 개헌은 이제 새 정부의 옵션(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국민적 열망이 그만큼 높다.
대통령 임기의 4년 중임 가능과 책임 국무총리,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 및 국민소환제 등은 거의 모든 국민이 원하는 개헌의 주요 알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법 독립과 사법 정의를 망가뜨리는 어떠한 활동도 불가능하게 하는 개헌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개헌 준비위원회 구성부터 공청회에 이르기까지 개헌의 전 과정이 반드시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 대통합과 함께 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국민 대통합’은 우리사회의 정의와 상식 회복, 그리고 국민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6월 4일 곧바로 정식 출범하는 새 정부의 어깨가 더욱 무겁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