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파' 랭글 전 美의원 별세...한국전쟁 참전하기도
할렘가 출신으로 정계 입문 후 46년간 美의회 지켜 한국에 대한 애정 많아...약자들 위한 목소리 내기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인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타계했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랭글 전 의원은 이날 미국 뉴욕주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94세.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30년 6월 뉴욕 할렘가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랭글 전 의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피해 어머니와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 방황하던 삶에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한국전쟁 참전이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 형을 따라 군에 입대한 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1월 전원 흑인으로 구성된 미국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한반도를 찾았다. 북한의 중국 국경지대까지 진격했다가 중국군 공격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당하기도 했던 랭글 전 의원은 뉴욕으로 돌아와 1년 만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대를 졸업했다.
로스쿨을 거쳐 개인 변호사로 활동했고 1961년 뉴욕 남부지방 검사보가 되면서 정치인들과 연이 닿았다. 1970년 뉴욕에서 연방 하원의원(민주)으로 당선된 이후 2017년 1월 은퇴할 때까지 46년간 민주당의 대표적인 거물급 흑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아프리카계 최초의 세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랭글 전 의원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저소득층 지역의 경제 발전과 주택 건설 촉진 등에 대한 법안을 잇따라 추진했다. 한편으로는 사교적이고 다정한 성격 덕에 당적을 막론하고 의회에서 ‘찰리’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평가다. 랭글 전 의원은 2010년 정치자금 모금 규정 등 윤리규정 위반 건으로 하원에서 징계 결의가 채택되는 등 한때 정치적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그해 가을 재선에 성공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한국전쟁 참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퍼플하트(미군 복무 도중 전사했거나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와 동성 무공훈장, 한국 정부의 수교훈장인 광화장을 받은 랭글 전 위원은 미국 내에서 ‘잊힌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미국 의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지지해 체결에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3년에는 미국 의회 내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 창설을 주도했고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랭글 전 의원은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라며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한미)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소망한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