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결혼해야만 ‘임직’이 가능한가?
■ ‘미혼 임직자’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시선 만혼·비혼화로 미혼인구 급증 교회서도 결혼 않는 싱글 늘어 교회내 사역·임직 논의 활발 칼빈, 독신은 그리스도인의 자유
만혼, 비혼화로 미혼인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교회 내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교회에서 삶의 고민이나 어려움에 대해 터놓고 대화할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목회자들도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느낀다. 싱글들이 목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싱글라이프는 결혼 상태에 있지 않은 싱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의 여정 일부이다. 이에 따라 싱글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이들을 배려하는 교회 분위기와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서의 싱글은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단순히 결혼을 안한 것을 넘어 여러 가지 면에서 파급되는 영향이 크다. 특히 이들이 교회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과 사역, 그리고 임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핵심적인 이슈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장로, 집사, 권사, 그리고 목사로 임직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교회의 헌법상 결혼 여부는 교회 직분 임직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예장합동 총회 헌법 제4장 2조는 "목사 될 자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앙과 행실이 선량하며 가정을 잘 다스릴 것"이라 하면서도 결혼 여부를 명시하지 않는다. 장로, 집사, 권사의 자격에도 마찬가지로 결혼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 규정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사무엘과 예레미야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름을 받았으며, 예레미야는 오히려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 사도 바울은 독신으로 사역했으며, 디모데와 디도 역시 결혼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지난 4월 26일 경기도 산본의 한 교회에서 권사로 임직받은 홍수정 권사는 미혼이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왔고, 여러 부서를 섬기며 교회를 위해 헌신해 왔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분에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교회의 사역 역량을 스스로 제한하는 셈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홍 권사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서 권사직에 대해 부담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제 삶 자체로도 충분히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교인들의 격려와 담임목사님의 신뢰 속에 기쁘게 임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실제로 각 교단에서도 ‘미혼 강도사의 목사 안수’에 대한 입장을 다뤘다. 예장고신 총회는 지난해인 제74회 총회에 상정된 안건 중 미혼 강도사의 목사 임직에 대한 기준 지침 청원 건이 있었다. 헌의안 상정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혼인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 목사의 결혼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로 임직 될 나이가 훨씬 지나 혼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사 임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강도사도 혼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보니, 미혼 강도사의 목사 임직에 대한 요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요청이 지역 교회 현장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총회는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는 사회 현실과 신체적,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결혼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혼 강도사에게도 목사 안수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장합신 총회 역시 지난해 제109회 총회에서 "최근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비자발적 비혼자들이 증가하는 사회 환경 속에 강도사고시 합격 후 오랜 기간 목사 임직을 받지 못하는 교역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미혼 강도사가 목사안수 요건을 갖춘 경우(강도사 인허 후 10년, 나이 45세 이상) 목사 고시 응시 및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청원됐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이미 지난 2019년 보고서를 통해 "목회자가 결혼했을 때의 유익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고 사역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와 함께 "성경은 꼭 목회자나 직분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은사가 허락하는 한 독신 생활을 권장하기도 한다. 독신의 사유는 개개인별로 여러 가지 경우들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독신 자체가 직분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결혼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정과 교회를 향한 헌신이라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성경에서는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조건이 있으나 이는 도덕적 정결성을 뜻할 뿐 혼인 유무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바울 사도 역시 독신을 유지하며 복음 사역에 전념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현대 교회에서도 유효한 사역 모델이다.
역사적으로도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독신 강요를 거부했지만 결혼을 성직자의 필수조건으로 삼지는 않았다. 칼빈은 "독신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며, 결혼은 사역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회가 다시금 주목해야 할 점은 결혼의 유무보다는 미혼 성도들의 ‘자존감 회복’을 통한 사명감 고취가 급선무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청년들은 주거, 취업, 결혼,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고 조사됐다. 이런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사역과 임직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진정한 사명이 되어야 한다.
김의선 군포새중앙교회 목사는 "교회는 청년들에게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사명과 소명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면서 "단순히 결혼한 사람만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지금의 시대와 복음의 본질 모두 부합하지 않다. 오히려 결혼하지 않은 이들이 복음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이지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직분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신앙과 인격, 사명감이 뚜렷한 자라면 누구나 교회에서 임직을 받고 사역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교회도 이에 맞게 지혜롭고 성경적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혼자라 하여 사역의 문이 닫혀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오늘의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역의 주체이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는 귀한 일꾼일 수 있다. 교회가 그들을 품고 함께 동역할 때 복음은 더 넓고 깊게 퍼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