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가 중요하지만 '제2의 삼성·SK하이닉스'가 더 값지다
글로벌 무역전쟁 게임체인저, 中 '희토류' 무기화
최근 EU-중앙아시아 정상회담 전날 카자흐스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희토류 매장지가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광산에는 세륨·란타늄·네오디뮴·이트륨 등 첨단 산업의 필수적인 희귀 금속들이 대량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희토류 생산량 1위라는 목줄을 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서도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정도로 희토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희토류는 무엇인가?
희토류는 원소 주기율 표상에 존재하는 17개 정도의 희소 금속이다. 그 존재는 과학적·기술적·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게임 체인저다. 21세기의 기술을 대표하는 물질로 실리콘과 함께 소량으로도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전자기기들의 심장과 혈액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의 석유라고도 부를 정도다.
예를 들면 네오디뮴은 엄청난 자성으로 전기차나 풍력발전기, 로봇의 액추에이터에 꼭 필요하고 무기에서는 미사일 유도 장치에 사용된다. 이트륨은 극한의 온도에서도 안정적이라 엔진이나 터빈, 우주항공·군사용으로 사용된다. 우리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과 컴퓨터에도 당연히 들어간다.
이처럼 중요한 곳엔 모두 들어가는 희토류는 중국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하고, 반도체에 들어가는 희토류의 중국 수입 비중은 무려 79.4%나 된다. 이 정도면 중국이 희토류를 가지고 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협박하고 있는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희토류의 빛과 어두움
한 나라에서 희토류를 활발하게 개발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에는 ‘저렴한 인건비에 고분고분한 노동자들’과 ‘환경오염이나 노동권 침해도 무릅쓰는 개발제일주의 관점’이 있다. 즉 희토류 채굴업은 땅이 넓고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들이 주력으로 밀 수 있는 산업이며, 여기에 정확히 부합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적인 희토류 생산국이 된 것이다.
2025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희토류 채굴 및 가공 과정에서 극악한 환경오염과 심각한 산업재해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정화 비용이나 노동자에 대한 복지, 보상 등 기업이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이행할수록 채산성이 떨어진다. 대다수 선진국이 희토류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것도 매장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환경보호 같은 사치를 부릴 여유조차 없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황사도 희토류가 매장돼 있다는 중국 남부지역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생긴 산림 파괴, 산 붕괴, 식수원 오염 등의 부수적인 피해다.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지만 무겁게 깔린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원이다.
카자흐스탄 희토류의 가치
이번 카자흐스탄의 희토류 매장지 발견은 21세기형 유전의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중국의 폭주를 막을 희토류 공급지로 카자흐스탄이 부상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옥죄고 있는데, 중국 절반 이상의 공급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미국에게는 호재이고 중국에게는 큰 악재인 것이 당연하다.
아제르바이잔 발표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지층의 최대 300m 깊이에 적어도 2000만 톤 이상의 희토류 금속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로이터통신에서도 이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매장량으로만 따지면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브라질 다음으로 등극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아직 발견 초기여서 연구자들이 더 조사를 해야 되지만, 초기 단계에 이 정도가 예측된 점이 중요하다.
희토류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네오디뮴·세륨 같은 ‘경희토류’와 밀도가 높은 ‘중희토류’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매장량도 적고 최첨단 분야에 많이 쓰이는 중희토류가 약간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아직은 카자흐스탄 희토류가 경희토류가 많은지 중희토류가 많은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중희토류가 더 많다고 발표되면 중국으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정제과정에서 지하수 등 환경오염
희토류 정제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유독 화학물질을 사용해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고 방사성 물질도 나온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이미 광업이 전체 GDP의 15-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환경을 엄청나게 신경 쓰진 않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이 탈중국화 정책에 희생될 나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으로서 이런 기회는 접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카자흐스탄이 아시아 최고의 부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카자흐스탄 정부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지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힘을 잃게 되는가? 당장은 아니다. 단기간에 중국이 그 위상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희토류는 대체재가 없고 재활용률도 낮기 때문에 완전한 수급 균형이 잡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희토류 시장은 향후 5년에서 10년 내로 수요 폭증과 공급망의 대전환이라는 흐름 속에서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중국의 4000만 톤에 비해 카자흐스탄의 2000만 톤 매장량이 숫자만 놓고 본다면 적게 보일 수 있지만, 세계 경제와 기술의 유의미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희토류 걱정할 때 아닌 대한민국
국내에도 충청북도 충주시와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 약 2400만 톤 규모의 희토류 광맥이 발견됐다. 심지어 발견된 지 상당히 오래됐다. 광맥에서 총 14만7500톤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약 50여 년간 자급자족이 가능한 양이라고 한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환경오염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채굴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당장 생산되지 않아도 우리 땅에 묻혀 있는 것만으로 전략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사실로 안심해서는 안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지금 아시아에서 과학 기술력은 중국이 1등, 제조 기술력은 일본이 1등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1등이긴 하지만 온갖 곳에서 심지어 외국 유튜브에서도 한국은 망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이러다가는 나중에 카자흐스탄에도 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삼성에 균열이 가고 있다. 이 기둥이 서 있는 토양이 튼튼하질 못하니 쿠팡 같은 기업은 애초에 미국에 상장을 해버리고, 한국의 AI 스타트업인 올거나이즈도 일본에 거점을 세우고 일본 상장을 준비 중이다. 리벨리온이나 업스테이지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들도 일본에 지사를 세우면서 한국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이 한국에서 버텨주고 있는 것이 존경스럽고 미안해지는 상황이다. 한국처럼 기업 비친화적인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수익률 좀 나온다 싶으면, 이슈가 된다 싶으면, 대표들 국감 끌고 가 규제하고 뭔가 요구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본이니 한국에 있을 이유가 애국심 외에는 딱히 없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가 AI로 난리인데 한국만 유독 조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AI 특화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성장해야 할 시기인데, 정말 안타까운 이유로 그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2의 삼성, 제3의 SK하이닉스를 만들고 있는 기업가들을 도와주고 응원해야 한다. 그것이 카자흐스탄 희토류보다 훨씬 더 값진 자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