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대중화 더딘 발걸음...저커버그의 메타 '독주의 역설'
포기할 수 없는 미래 VR
차세대 스마트 기기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헤드셋이다. 1968년 이반 서덜랜드가 최초로 만들었으나 의외로 상업화 및 시장 보급이 더뎠다. 최초로 상업화된 HMD가 선보인 것은 1994년이다. VR기기가 나온 지 벌써 수십 년이지만 스마트폰이나 PC에 비해 여전히 시장이 작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시장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왜 VR기기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언제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VR기기와 비슷한 장르로 관심을 받았다가 몰락한 시장이 3D TV다. 집에 TV가 있는데 굳이 3D 영상 하나 더 보자고 비싼 돈 주고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VR 기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PC와 모바일 그리고 각종 콘솔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기꺼이 VR 장비를 살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3D TV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몰락해 버리는 수가 있다.
20~30년 전 곧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거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타이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SF 영화 등에서 묘사된 VR 또한 SF적인 상상에 그칠 수도 있다.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유리에 투사된 3차원 컴퓨터를 특수장갑을 낀 손으로 이리저리 지휘하는 모습을 본 게 벌써 23년 전이다.
VR 대중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선 VR기기 자체 구동이 아니라 별도의 하드웨어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교적 넓은 공간이 요구되는 것과 아직까지 VR 연출이 놀이공원의 어트랙션 수준으로 머무르고 있는 점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반대로 긍정적인 점을 들자면 VR 시장에는 3D TV처럼 어느 가정에나 있는 일반 TV 같은 막강한 경쟁자가 딱히 없다. VR기기를 통해 현재의 컴퓨터 장비들은 현실세계 모방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것이 VR기기의 목적이고 목표이기에 아직은 이 시장의 몰락을 점치는 것은 너무 섣부를 수 있다.
블루 오션인 동시 레드 오션
PC(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 1970년대이다. 이 컴퓨터에 명령을 하는 장비는 키보드와 마우스, 명령 결과를 보여주는 장비는 모니터와 스피커가 있다. 인류의 역사와 50년을 같이한 이 장비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익숙하다. 그 익숙함에 가려져 눈치채지 못해서 그렇지, 키보드와 마우스는 결코 인간의 물리적 상호작용에 최적화된 주변기기가 아니며 모니터 또한 마찬가지다.
디지털 콘텐츠들은 현실의 상호작용을 다른 방식으로 치환해 모방하려 했고, 그러한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며 소비자들에게 학습됐다. 그래서 현재는 평면 2차원 모니터 속에서 3차원으로 모방된 것을 진짜 3차원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일 좋은 화면, 화면비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크기에 제한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VR기기다. VR기기의 핸드 컨트롤러는 최종적으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장갑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초기 단계라는 기대가 있다.
재미있게도 현재 VR시장은 블루 오션인 상태지만 동시에 레드 오션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 빅테크 기업들에서 제품은 개발 중이지만 쉽게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블루 오션인 이유는 새롭게 형성된 시장이고 전망이 밝으며 차세대 스마트 기기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 동시에 레드 오션인 이유는 메타(페이스북 운영 회사)에서 86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안고 가면서도 포기를 하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의 손해보는 장사
메타 말고도 VR기기에 뛰어든 회사들은 많았다. 하지만 VR기기에 이런저런 특이한 기능들을 넣어 내놓았던 회사들은 결국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메타에서 퀘스트(메타의 VR기기 모델)를 발표하면서 속된 말로 경쟁자들을 다 없애 버렸다.
아이폰이라는 확고한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애플도 비전 프로라는 VR 제품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유례 없는 실패를 겪었다. 600g의 압도적인 무게라는 단점과 500만 원이나 하는 비싼 가격, 애플 특유의 폐쇄성으로 기존에 형성된 VR 플랫폼들과 연동이 되지 않는 등 많은 단점이 있었지만, 메타가 형성해 놓은 시장 가격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가정 보급용을 목표로 양산화된 VR기기는 오큘러스의 CV1이라는 모델로 2016년 시작됐다. 그들은 처음에 저렴한 부품으로 VR을 구현해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목표 가격대는 300달러, 하지만 VR기기 구조상 절대 불가능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가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게 됐다. 천문학적 손해를 입으면서 말이다. 아무리 원가 절감을 하고 마진을 최대한 줄여도 오큘러스 목표 300달러의 2배~4배 가격이 최선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지금도 하나가 팔리면 그 배 이상의 손해를 보는 기형적인 구조로 VR기기를 판매 중이다.
메타가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면서도 VR시장에서 버티며 VR기기를 보급하면서 스스로 기준점이 되어 버렸다. 메타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성능의 기기도 가격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메타가 전 세계를 독점한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 등)를 통해 얻는 막대한 수입으로 VR 자선사업을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니 말 다했다.
메타가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도 VR시장을 놓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VR계의 아이폰이 되려는 것이다. IT 시장은 누가 먼저 어떤 분야의 ‘아이폰’이 되는가 싸움이다. 선점하고 자리 잡아버리면 이미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너무 많이 봐왔던 것이다.
갈길 멀어도 포기 못하는 기술
메타가 많은 경쟁사들을 가격으로 눌러 버린 이후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VR 기술은 갈 길이 멀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가정용 VR기기들은 여전히 HMD(Head Mount Display,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형식으로 시각과 청각 위주의 출력기기다. 촉각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으며 후각과 미각은 개발단계의 초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가상세계의 발판이 되어줄 전방위 트레드밀(대각선을 포함한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러닝머신으로 생각하면 된다) 또한 각종 프로토타입과 제품들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수백에서 1000만 원 사이로 사실상 가정용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VR 시장에 뛰어들 거면 우리처럼 몇십 조 단위의 손해를 보면서 경쟁해 보든지…’라는 페이스를 유지하며 메타가 버티고 있는 이상 누가 뛰어들까 싶지만, 놀랍게도 현재 삼성을 비롯한 여러 빅테크 기업들에서 HMD를 차세대 기기로 여기며 연구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충분히 흥미롭게 지켜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