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리 만난 이재명, 이재명 했다

2025-03-26     이정민 청년기업가
이정민

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신간 <넥서스>를 소개하는 일정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하라리는 인류의 진화와 사회 구조에 대한 독창적인 사상과 통찰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본래 역사학자이지만 거의 모든 분야를 통섭해 책을 쓴다.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출현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건과 변화를 창의적인 관점으로 다뤘다. 인간의 미래 과제인 불멸·행복·신성을 위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피엔스에서 진화한 ‘호모 데우스’ 개념을 제시했다.

문체부는 지난 20일 하라리를 초청해 ‘AI시대, 인류의 길’이라는 주제로 연세대에서 특별 대담을 가졌다. 인류학자로서 그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주로 논의했다. 지금의 인공지능 단계를 넘어서 AGI라는 인공일반지능 수준이 되면, 더 많은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등이 성행하고 인간사회는 더욱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몰고 올 인류적 파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막대한 투자와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인간의 신뢰를 하루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인류는 AI에 의해 통제 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그와의 대담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그의 명성을 이용해 탄핵 국면에서 유리한 여론을 이끌어내려고 한 모략이었다. 지난 20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한국에서 발생한 계엄령과 탄핵 국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특정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하라리는 "한국 정치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전문가도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아마도 그가 LGBT 성향인 점을 근거로, 좌파 성향이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는 "자유언론과 독립적인 사법부가 없다면 선거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북한이나 러시아가 그 예"라며 오히려 공산 진영을 비판했다. 해당 기자는 오히려 ‘역관광’ 당했다.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미국과 유럽의 좌파 세력들은 하마스를 지지했다. 당시 하라리는 "정의에 대한 고정된 시야를 추구하면서 잔혹한 정부나 운동에 합류하는 사례는 극단 좌파들에게 처음이 아니다"라며 맹목적인 서구 좌파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연세대 강연 때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학생 일동’이 유발 하라리 강연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즉 그의 이념 성향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적어도 반지성적 좌파는 아닌 것이다.

지난 22일 하라리는 이재명 대표와 인공지능을 주제로 국회에서 100분간 대담을 나눴다. 본인의 사법문제로 오로지 정치적인 계산밖에 없을 이재명 대표 머릿속에 인공지능 따위가 차지할 공간이 있을까. 조급했던 그는 ‘K-엔비디아’를 다시 꺼내며 "인공지능 관련 기업 지분에 공공이 참여하는 방안을 이야기했다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다"며 하라리의 공감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하라리는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며 또다시 선을 그었다.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아주 원론적인 말로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이재명은 하라리를 만났다는 어그로 외에는 그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얻지 못했다. 결국 이재명이 이재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