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듣는 인간 Homo Auditus] (78) 잘 아시는 바와 같이~

2025-03-23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
박인기

강연 또는 대화에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하는 걸 본다. 이 표현은 영어 표현 "As you know~"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한문투 표현으로는 "주지(周知/두루 아시는)하시는 바와 같이"라는 표현이 있다.

개인적 스피치 습관이라기에는 너무 널리 퍼져 있어서 상투어처럼 됐다. 청자들에게 부정 효과를 줄 수 있어서 권장할 습관은 아니다.

물론 긍정의 효과도 있다. 주제(topic)를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고 심리적으로 연대한다는 걸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 그거 나도 잘 알고 있지, 당신이 그걸 말한다니까 관심이 쏠리네. 집중해서 들어볼까." 이런 성공적 반응을 얻으려면 말하는 쪽에서는 꼭 확인해야 할 점이 있다. 내가 말하려는 주제를 상대도 정말 진짜로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즉 지금 화자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라고 말한 내용을 청자들이 그닥 잘 알고 있지 못할 때는 부정적 반응이 먼저 생긴다. 첫째는 ‘너는 아는 거지만, 나는 모르는데, 어쩌라고?’라는 반응이다. 상대로부터는 물론이고 화제로부터의 소외를 느낀다. 둘째는 ‘이걸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른단 말인가’ 하는 반응이다. 불필요한 열패감을 조장해 화제에서 멀어지게 한다.

셋째는 ‘이걸 모르면, 자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건가’라는 반응이다. 화자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넷째는 ‘너, 유식한 거, 티내는 거야 뭐야’라는 반응이다. 자격지심에서 나온 속좁은 투정이라 할 수 있지만, 청자는 화자가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실패는 물론이고 관계의 좌초까지 불러온다.

정말 두루 다 아는 사실이라면, 굳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라고 운을 뗄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듣는 쪽에서도 이 말에 불필요하게 도발되지 않는 것이 성숙한 듣기이다. 상대 화자의 잘난 척하는 것 미워지는 건 무엇이겠는가. 그게 바로 내 마음 안에 있는 나의 ‘잘난 척하는 마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