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법’ 개정 시급한 이유…필리핀 당국, 수백 명 규모 中 간첩조직 적발
우리나라가 간첩법 개정을 하루속히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중국 간첩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친중 성향’이 덜한 것으로 알려진 필리핀에서 최근 수백여 명 규모의 중국 간첩 조직을 적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 수사당국은 올 들어 8명의 중국 간첩 용의자를 검거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필리핀 국가수사청(NBI)은 지난 7일 "수백여 명 규모의 중국 간첩 조직을 적발했으며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간첩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NBI는 중국 간첩들이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온라인 도박장 등 사이버 범죄에도 관여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또한 온라인 게임 업체로 유입된 중국 간첩은 해커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NBI는 중국 간첩들을 적발하는 데 미 연방수사국(FBI)과 호주 연방경찰과 공조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당국은 올 들어 중국 간첩 적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시에 필리핀에서 불법 온라인 도박장을 운영하는 중국 조직폭력배 소탕도 함께 하고 있다.
올해 필리핀 NBI가 적발한 중국 간첩들을 보면, 관광객이나 유학생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활동과 많은 부분에서 겹쳐 보인다.
지난 1월 20일 NBI는 군 기지와 경찰서 등의 정보를 수집한 중국인 덩위안칭과 필리핀인 2명을 검거했다. 덩위안칭은 중국 인민해방군 대학 출신으로 최소 5년 이상 필리핀에 거주했다.
1월 24일에는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드론과 CCTV, 휴대전화로 군 기지, 해안경비정 등 각종 보안시설과 장비를 몰래 촬영하던 중국인 5명을 검거했다. 이들 중 4명은 필리핀 화교단체 대표 등으로 활동하던 장기거주자였다고 한다. 이들이 속해 있던 단체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중화전국귀국화교연합회 관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자기네가 대만인 관광객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2월 25일에는 휴대전화 도청장치를 탑재한 차량으로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대통령궁, 미국대사관, 군 기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도청을 한 중국인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차에 ‘자율주행개발차량’이라고 써 붙인 뒤 거리를 돌며 정보를 수집했다. 필리핀은 이렇게 올 들어 2월 말까지 중국인 간첩 8명을 검거했다.
필리핀 당국이 중국 간첩 소탕에 열을 올리게 된 배경은 지난해 6월 루손섬 타를라크주 밤반시 시장 사건이다. 앨리스 궈 밤반시 시장은 필리핀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한 필리핀 상원의원이 궈 시장의 실명이 ‘궈화핑’이며 2003년 1월 필리핀에 입국한 중국인이라고 폭로하면서 ‘간첩’ 논란이 불거졌다.
이 논란이 있기 3개월 전 궈 시장은 밤반시 온라인 도박장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계 업체가 운영하던 도박장은 궈 시장 소유 토지에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필리핀 당국이 도박장을 단속한 결과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밀입국 알선, 성매매 등 온갖 범죄가 벌어진 것을 확인했다. 또한 도박장 단속 과정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군복, 훈장, 계급장, 총까지 발견했다.
결국 필리핀 대통령 직속 조직범죄대책위원회(PAOCC)는 이 사건과 관련해 궈 시장과 도박장 관계자 등 14명을 밀입국 알선·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필리핀 전역에서 간첩 색출 작전이 시작되면서 중국인 간첩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에는 현재 15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이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계 필리핀인 인구는 2300만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