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세계] 이란 스파이가 된 이스라엘인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보기관을 보유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모사드(Mossad)는 국가의 적을 끝까지 추적해 처단하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그런 이스라엘에서 자국을 배신하고 적대국인 이란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최근 필자는 내곡동 동기생 A로부터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2월 14일 자 기사와 함께 메시지를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란에 포섭돼 나라를 배신하는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이스라엘 하면 모두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는 ‘왜 그렇게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이란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할까?’(Why are so many Israeli Jews spying for Iran?)라는 제목과,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조국의 가장 치명적인 적을 돕기 위해 자기들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Unprecedented numbers are risking everything to help their country’s bitterest enemy)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터키 이주민 출신 사업가 마만(73세)은 이란으로부터 스파이 활동의 대가로 5000유로를, 아제르바이잔 이주민 출신 음악가이자 가족 간첩단의 수괴인 니자노프(43세)는 30만 달러를 받았다. 군 복무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는 극단적 정통파(하레디, Haredi) 유대인 바이스(24세)는 2만5000달러를, 이스라엘 방위군(IDF) 예비역인 엘리아스포프(21세)와 안드레이예프(21세)는 각각 2500달러와 50달러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스파이 사례들이다. 기사에 따르면, 2022년 말부터 이란에 포섭된 이스라엘인은 수백 명을 넘었으며, 2024년 한 해 동안 체포된 스파이만 39명에 달했다.
이스라엘은 수천 년간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의 역사를 겪었고, 홀로코스트(Holocaust)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당했다. 1948년 건국 이후에도 끊임없는 무력 충돌 속에서 생존해야 했으며,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런 역사적·종교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2025년 1월 2일, 이스라엘 국내 보안정보기관 신벳(Shin Bet)은 이란의 스파이 활동과 관련된 체포 건수가 전년 대비 40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국가적 결속에 대한 자부심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스라엘에서, 조국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왜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경제적 보상이 이유일까, 아니면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정치권의 부패, 좌파와 우파의 대립, 세속 사회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극단적 정통파와 민족주의 세력 간 갈등, 이주민들의 정치적 소외감과 재정적 어려움 등이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심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정치적 환멸과 사회적 혼란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이스라엘인이 이란의 금전적 유혹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가 안보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내부 균열을 이용하려는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시감(旣視感)이다.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이 마치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예지감(予知感)이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머지않아 8000킬로미터 떨어진 극동의 어느 나라에서도 반복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