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작가]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La Societe de consommation)
당신이 '명품백'에 빠진 이유는...미디어에 세뇌된 '욕망'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조작하고 대체한다,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제가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간파했다. 영화 ‘매트릭스’는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처럼 그의 사상은 대중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소비는 특정한 의미와 가치의 전달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소비의 사회’는 현대사회의 본질을 분석한 걸작이다. 이제 소비는 단순히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넘어 상품의 상징적 가치를 소비한다. 사람들은 특정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사회적 계층이나 소속을 드러낸다.
현대사회의 소비는 단순한 물질적 필요의 충족이 아니라 기호의 소비다. 사람들은 단순히 상품의 기능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와 이미지를 소비한다. 대중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시뮬라크르(Simulacres)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현실을 왜곡한 미디어·광고·SNS 등을 진짜로 받아들인다.
현대사회에서 상품의 소비는 단순한 물건의 소비가 아닌 특정한 의미와 가치의 전달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기호(sign)를 소비함으로써 의미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한다. 여기서 기호는 사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상징체계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그 기능이나 효용성을 넘어 그 상품의 상징적 가치와 이미지를 구매하고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별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소비는 사회적 차별을 만들어낸다. 특정 브랜드, 고급한 상품과 대중적 상품의 구별은 소비에 따른 차별의 기호적 작용이다.
여기서 대중매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는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며 소비문화를 확산시킨다. 따라서 소비는 사람들의 실질적 욕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욕망이다. 이러한 소비를 통해 얻는 사람들의 만족감은 일시적이어서 마치 배는 부르지만 언제나 허기진 상태인 것과 같다.
각종 미디어는 현실과 동떨어진 차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현혹된 사람들은 실제로 필요해서라기보다 환상적인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상품을 구매한다.
상품 사는 것은 욕망을 사는 것
시뮬라크르(simulacres)는 현대사회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현실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시뮬라크르는 진짜와 연관성이 없는 복제 또는 원본 없는 이미지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실제 대상이 없는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상현실을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렇기에 시뮬라크르는 현실을 모방하는 현상을 넘어 현실을 대체한다.
사람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현실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그 세계에 더욱 몰입한다. 예컨대 디즈니랜드는 실제 현실을 모방한 가상공간이지만, 사람들은 디즈니랜드의 경험을 실제 현실보다 더 특별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 또한 소셜 미디어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진짜로 믿는다.
소비사회에서 대중은 자유롭게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욕망을 따르는 것이다. 소비가 확대되고 지속될수록 사람들의 만족은 줄어들면서 공허함과 불안은 더욱 커져간다. 이처럼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단순한 경제행위가 아니라 소비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을 형성하고 통제하는지를 설명한다.
소비는 곧 특정계급 신분의 상징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사회계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즉, 소비는 계급을 유지하고 만드는 중요한 도구이다. 과거 사회의 계급은 타고난 신분이나 생산력의 소유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현대사회에서 계급은 소비 패턴에 따라 형성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한다. 예를 들어 명품 가방·옷·고급 자동차·프리미엄 서비스 회원권을 소유하는 이유는 특정 계층·계급에 속한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기 위한 것으로, 소비는 곧 신분의 상징이다.
이제 소비는 단순한 상품 구매가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소비사회에서는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을 모방하고, 상위계층은 다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해외 명품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대중화되고, 이에 반응해 초고가 한정판 상품이 새로 등장한다.
소비사회에서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등장하면서 계급을 유지하고 탈환하려는 경쟁이 지속된다. 대중은 소비를 통해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조종되고 있다.
현대사회 이해하는 중요한 틀 제시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으나 미래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20세기 대표적 지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대중이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사회적 관계, 정체성, 욕망을 형성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임을 밝혀냈다. 소비가 단순히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차별성을 드러내는 기호체계의 작동 방식임을 분석했다. 또한 미디어를 통한 광고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현대사회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이러한 연구 분석은 소비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했다. 그의 또 한 편의 걸작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은 원본을 모방한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인식되는 과정을 탁월하게 설명했다.
미디어와 소비사회, 대중과 대중문화를 독창적으로 해석한 그의 이론들은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와 미디어 등 현대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영화 ‘매트릭스’의 알파요 오메가와 같다. 감독인 워쇼스키 자매는 매트릭스 개념을 보드리야르 철학에서 빌려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매트릭스’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에게 촬영 전 보드리야르의 책을 읽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매트릭스’에서 인간은 매트릭스로 불리는 가상세계를 현실로 느낀다. 매트릭스 세계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세계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두 가지 색 알약 중 빨간색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색을 먹으면 기억을 잊고 보이는 것만 보며 살게 된다.
감독은 ‘매트릭스’ 1편에 보드리야르의 책 표지를 삽입했다. 주인공 토머스 앤더슨은 낮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밤에는 해커 네오로 이중생활을 한다. 네오가 초이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건네줄 때, 녹색 표지 두꺼운 책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