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구리 수입 국가안보 영향 조사하라"…관세 부과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수입 구리 및 구리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염두에 두고, 구리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미국의 구리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사를 실시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서명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큰 영향(big impact)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조사 대상에 대해 "구리 원광과 구리 정광, 정련동(제련된 구리), 구리 합금, 고철 구리 및 구리 파생 제품을 살펴볼 것"이라며 조사 일정에 대해 "신속히 움직일 것이나 시간표는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쿼터(각국의 수출물량 제한)보다 관세를 선호한다"고 밝힌 뒤 "세율은 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관세 부과를 기정사실로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따라서 이번 구리에 대한 조사는 3월 12일부터 예외 없이 25% 관세 부과를 결정한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금속 분야 ‘관세 폭탄’의 확산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미국의 구리 산업도 철강·알루미늄과 마찬가지로 국내 생산을 공격하는 글로벌 행위자들에 의해 파괴됐다"며 "우리의 구리 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관세 부과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의 국방과 산업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한 뒤 "그것은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면제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구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때"라고 강조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작년 구리 수입은 96억 달러, 수출은 113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는 미국의 무역적자 완화 보다는 국가안보와 산업에서 중요한 광물인 구리의 채굴에서부터 정련에 이르는 전 제조시설을 국내화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현재의 전기차 수요와 전기 소모가 많은 인공지능(AI) 관련 용도를 감안할 때 미래에 미국 내 수요에 비해 구리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미국이 구리 분야의 장기적인 무역 보호 조치에 대한 납득할 만한 확실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미국 내에서 구리 용광로와 제련 능력을 개발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철강과 알루미늄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세계 구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초과생산과 덤핑을 하고 있다"며 저가로 세계 각국에 흘러 들어가는 중국산을 중요한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2024년 대미 구리 수출국(정련동 기준) 순위는 칠레가 1위(6061억 달러), 캐나다 2위(3993억 달러), 멕시코 3위(979억 달러), 페루 4위(904억 달러), 독일 5위(847억 달러), 한국 6위(594억 달러), 중국 7위(488억 달러) 순이다. 구리에 대한 관세가 최종적으로 도입되면 정련동과 구리 제품의 최대 대미 수출국인 칠레, 캐나다, 멕시코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