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세계] 거짓말탐지기 통과한 뻔뻔한 스파이

2025-02-20     장석광 범죄학 박사·JK 포렌식 인텔리전스 대표
장석광

"모든 이야기에는 세 가지 면이 있다: 네 이야기, 내 이야기, 그리고 진실"(There are three sides to every story: your side, my side, and the truth). 사람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실제 진실은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거짓말의 반은 진실로 꾸며진다." 거짓말도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일부는 사실을 기반으로 할 때,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의미다.

참말과 거짓말을 구분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보통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손에 땀이 나고, 호흡은 가빠지며, 심장이 요동을 친다. 이런 생리적 반응을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 거짓말탐지기다. 신체의 변화들을 그래프로 표시한다고 해서 폴리그래프(Polygraph)라고도 부른다. 폴리(poly)는 많다(many)는 뜻이니, 폴리그래프는 그래프가 많다는 의미다. 엄격하게 말하면 폴리그래프는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변화를 읽어내는 도구에 불과하다.

거짓말탐지기를 직접 다루는 검사관들은 폴리그래프의 정확도를 95%에서 97%까지 보는 경우도 있지만, 실무에서는 대개 90% 전후로 평가한다. 그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거짓말은 모두 걸러낸다. 평범한 사람들은 검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거짓말을 실토한다. 그런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두 번이나 통과한 스파이가 있다. KGB의 이중스파이로 활동한 CIA의 올드리치 에임스(Aldrich Ames)다.

1986년 5월, 에임스가 KGB 스파이 활동을 시작한 지 1년가량 되었을 때 폴리그래프 검사를 받게 됐다. 불안을 느낀 에임스가 KGB 핸들러에게 자문을 구했다. KGB는 "긴장을 풀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조언했다. "적성국 요원과 허가받지 않은 접촉이 있었느냐?"는 검사관의 질문에 부정 반응이 나왔다. 에임스는 "소련과 동유럽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적성국 요원들과 접촉이 있었을 수 있다"고 교묘하게 둘러댔다.

1991년 4월, CIA의 5년 검사 주기에 따라 스파이 활동 후 두 번째 폴리그래프 검사를 받게 됐다. 검사관이 "밝히기 곤란한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6만7000달러 연봉의 에임스가 50만 달러짜리 집을 사고 빨간색 재규어를 몰고 다니는 것은 누가 봐도 평범치 않은 일이었다. 다소 부정적 반응이 나왔지만, 검사관은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에임스가 사전 테스트에서 검사관에게 "콜롬비아의 처가가 부유하고, 많은 돈이 장인에게서 나왔다"며 미리 연막을 쳐두었던 것이다. 에임스에겐 예상된 질문이었고, 처가가 부자인 것도 사실이었다.

"특별한 마법은 없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감옥에 갇힌 미국인은 거의 모두가 소련 망명자에 의해 정체가 탄로났다. 내가 두려운 것은 소련 망명자이지, FBI나 CIA 검사에 걸린다는 것은 전혀 계산에 두지 않았다. 폴리그래프 검사관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 나는 그로부터 어떤 위압감을 느낀 적도 없다." 에임스의 거짓말탐지기 통과 비결이었다.

30여 년 전, 탈북자 한 명이 "억울하다"며 필자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필자의 조사 결과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필자는 동기생인 검사관에게 폴리그래프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동기생은 필자를 대상으로 폴리그래프 검사를 시연했고, 폴리그래프 앞에서 필자의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탈북자의 거짓이 드러났다. 북에 있는 가족 때문에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에임스 이후 40년! 폴리그래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검사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TV에서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에임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