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연구원 위장...中 산업스파이 활동 10년간 1300% 늘어
[세상을 훔친 '도둑'들 산업스파이와의 전쟁] ④ 노트북보다 사람을 더 사랑한 중국
① 역사를 바꾼 산업스파이
② R&D보다 효율성이 높은 산업스파이?
③ 노트북을 사랑한 산업스파이
④ 노트북보다 사람을 더 사랑한 중국
⑤ Made in China 전략
⑥ 북한의 끊어지지 않는 샘물
⑦ 산업스파이를 조장하는 기업문화
⑧ 기술유출 내부자 프로파일링
⑨ 산업스파이, 걸려도 남는 장사?
⑩ 산업스파이와의 전쟁
14억이 넘는 인구, 6000만 명에 가까운 화교, 100만이 넘는 해외 유학생, 160개국 500여 개의 공자학원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정보 자산이다.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정보기관이 이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것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중국 산업스파이 10년간 1300% 증가
2020년 7월,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FBI가 조사 중인 5000여 건의 방첩 사건 중 절반은 중국과 관련된 것"이고, "중국과 연계된 산업스파이 행위가 10년간 1300%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0년 9월, 1000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과 연구원의 비자가 취소됐다. 2021년, 500명 가까운 유학생 비자가 추가로 취소됐다. 미국은 이들이 자기들의 기술과 지적 재산을 훔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2023년 4월, 나노 기술 분야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대 찰스 리버(Charles Lieber) 교수가 법원으로부터 가택연금 6개월, 보호관찰 2년, 벌금 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리버 교수는 2011년 연구 협력을 조건으로 중국의 우한이공대(WUT)와 매월 급여 5만 달러, 연간 생활비 15만8000달러,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 항공권 제공, 연구소 설립 시 150만 달러를 지원받기로 계약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이 입은 피해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천인계획(千人計劃)과 계명계획(啓明計劃)
우한이공대(WUT)가 리버 교수를 영입한 것은 천인계획(千人計劃)의 일환이었다. 천인계획 목표는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세계적 수준의 인재를 포섭하는 것이었다. 포섭 인재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됐다. 초기에는 1000명 포섭이 목표였으나, 점점 규모가 확대되어 7000여 명까지 포섭됐다. 포섭된 인재는 대부분 미국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중국 과학자들이었으나 유럽과 일본, 한국 등지에서 포섭된 인재들도 있었다.
천인계획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 기관 주도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됐다. 포섭된 인재에겐 최대 500만 위안(약 9억 원)의 연구비, 100만 위안(약 1억8000만 원)의 일회성 보조금·생활비·주택 지원·연구 환경 제공·장기 비자 발급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중국의 주요 대학과 연구소, 국영 기업들이 인재들의 연구를 지원했고, 중국은 이들을 통해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기술·항공우주·군사기술 등 전략적 산업 분야에서 빠른 기술 발전을 이뤘다.
2018년 이후 미국이 천인계획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2019년 11월, 미국 상원 소위원회가 "천인계획이 미국의 연구 성과를 부당하게 빼앗고 있다"는 보고서를 공표했다. 2020년 들어서면서 FBI가 미·중 양국의 연구보조금을 받으면서도 미국 내에서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있는 연구자들을 적발하기 시작했다. 리버 교수 역시 중국과의 계약 내용을 신고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2018년 이후 천인계획은 공식적으로 중단됐지만, 계명계획(啓明計劃)이라는 후속 프로그램으로 은밀하게 부활했다. 계명계획은 미국·한국·유럽 등지의 반도체·인공지능·양자컴퓨팅·항공우주 등 전략적 기술 분야 인재들에 특히 집중한다. 포섭된 인재들에겐 주택 구입 보조금으로 300만에서 500만 위안(약 5억에서 9억 원)의 계약 보너스를 제공한다. 천인계획 때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유치 전략이다.
서울대·포스텍·KAIST 13명 천인계획에 포섭
천인계획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2011년부터 2018년 사이 서울대·포스텍·KAIST 등에서 최소 13명의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10억 원이 넘는 연구비와 고급 아파트 제공 등 중국의 파격적 제안에 넘어갔다.
2023년 6월에는 중국 국적의 한 연구원이 의료 로봇 기술 파일 1만여 건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도 발생했다. 국내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이 연구원이 유출한 기술은 6000여억 원의 시장가치가 있는 기술로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다.
또 KAIST의 한 교수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인 라이다(LIDAR) 관련 파일 72개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2024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이 교수는 천인계획에 참여해 중국 정부로부터 33억 원의 연구 지원금을 받았는데, 기술 유출로 인해 한국이 입은 피해는 장기적으론 수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독일 공자학원 산업스파이 활동 창구로
공자학원이 직접적으로 산업스파이 활동과 연결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공자학원의 대학 내 거점을 통해 연구 인력과 접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자학원과 산업스파이와의 연결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유럽 최대 기술 기업인 독일의 지멘스(Siemens)와 세계적 자동차 제조사 아우디(Audi)가 중국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공자학원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아우디는 중국의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Huawei) 유럽연구센터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관련한 공동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아우디의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미국 국방부가 2023년 10월 1일부터 공자학원의 지원을 받는 미국 대학에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미국 대학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연구개발(R&D)에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중국, 해외 인재 유치 절대 포기 안할 것
중국이 앞으로 천인계획, 계명계획 같은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시장 중심적 접근을 선호할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낮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국가 주도형 경제 모델 때문이다. 핵심 산업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이루어지며, 기술 혁신과 인재 확보는 전략적 목표로 간주된다. 따라서 정부의 지속적인 개입이 예상된다.
둘째, 기술 자립과 혁신의 필요성 때문이다. 반도체·AI·5G·바이오기술 등 첨단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해외 인재 유치가 필수적이며, 단기간 내 폐지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낮다.
셋째, 세계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의 기술 패권경쟁 속에서 중국은 인재 확보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오히려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이다.
넷째, 시장 경제와 정부 주도의 균형이다. 중국은 시장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국가 전략에 따라 기술 개발과 인재 유치를 조율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완전한 시장 경제 모델로의 전환이 어려움을 시사한다.
한국에는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국적자와 유학생, 중국 상사원들이 거주하고 있다. 공자학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23개가 운영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정보기관이 이들의 존재를 간과할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 그들의 길이 있다면 우리에겐 우리의 길이 있어야 한다. 창이 있는 곳에 방패는 따라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