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작가] 샤토브리앙 ‘죽음 저편의 회상’(Memoires d’outre-tombe)

"피로 물든 평등은 자유가 아니라 폭정...사람들 영혼 부수었다"

2025-02-10     박석근 작가

‘죽음 저편의 회상’(Memoires d’outre-tombe)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 1768~1848)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프랑스혁명을 몸소 겪은 지식인의 생생한 증언이며, 인간의 욕망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다. ‘죽음 저편의 회상’은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사를 해석하는 좌파적 시각에 따른 대중의식 만연 탓이다.

샤토브리앙

혁명의 잔학성에 보수주의로 회귀

샤토브리앙은 귀족 출신이었지만 구체제(Ancien Regime)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혁명을 사회적 불의를 해소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시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자코뱅에 의해 공포정치가 행해지고 루이16세가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샤토브리앙의 보수주의 사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의 이상을 내세워 절대왕정체제를 종식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끔찍한 폭력이 자행됐다. 권력을 잡은 자코뱅(Jacobins)은 공포정치를 하고 반대파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혁명파들은 1만6000명 이상을 단두대로 살해했는데, 그 중에는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귀족, 성직자, 혁명에 반대한 시민들이 포함됐다. 혁명재판소(Tribunal revolutionnaire)는 인민재판정으로 피의자에게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인민재판은 그나마 온건한 학살이었다. 1792년 9월, 혁명파들은 파리의 감옥에 갇힌 반혁명 시민 20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왕정을 지지한 프로이센 등 외세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자 위기를 느낀 혁명파들은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적과 내통한다는 죄목을 만들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시민들 중 일부는 대포로 살해당했다. 광기어린 민중은 자신들이 살해한 사람의 숫자를 자랑스레 밝히며 혁명정부에게 훈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9월 학살에 뒤이어 1793년 방데(Vendee)에서 대규모 학살이 또 일어났다. 프랑스 서부 방데지역에 살던 농민과 왕당파들이 혁명에 반기를 들자 자코뱅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군인들과 흥분한 민중은 마을을 통째로 불태웠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호수에 던져 수만 명을 몰살했다.

좌파들 극단적 폭력과 억압 자행

프랑스혁명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좌파들의 극단적 폭력과 억압이 자행됐다.

‘죽음 저편의회상’ 초판본,

샤토브리앙은 혁명의 어두운 측면을 회상하며 ‘죽음 저편의 회상’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La guillotine n’apporte pas l’egalite. L’egalite trempee de sang n’est pas la liberte, mais la tyrannie. 단두대는 평등을 가져오지 않는다. 피로 물든 평등은 자유가 아니라 폭정이다." "Detruire le passe ne garantit pas l’avenir. La Revolution a detruit l’histoire, mais n’a pas su creer un nouvel ordre. 과거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역사를 파괴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했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혁명에 대해, 그것은 대안이 없는 파괴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왕정의 몰락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왕정과 함께 사라진 도덕과 질서를 슬퍼한다." 샤토브리앙은 왕정복고를 주장한 게 아니었다. 그는 혁명으로 사회 안전과 윤리가 파괴된 것을 한탄했다.

샤토브리앙은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강물처럼 개인의 선택과 의지마저 흘려보낸다고 하면서, 인간의 삶이 역사에 휘둘리는 과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했다. 그는 인간존재에 대해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운명 속에서도 자유의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자연 통해 인간본성 탐구

샤토브리앙에게 자연은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을 때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자연의 변화를 통해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역사는 자연의 순환처럼 반복되며, 그 속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죽음 저편의 회상’.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을 가지며, 이것이 예술과 철학, 그리고 문명발전의 원동력이다. 샤토브리앙은 고독을 인간본성의 본질적 부분으로 통찰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홀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고독은 삶의 본질을 직면하는 시간이고, 그 속에서 존재의 한계를 깨닫는다.

샤토브리앙에게 문명의 부흥과 몰락은 자연의 순환에 다름 아니다. 그는 고대 로마제국과 프랑스혁명의 몰락을 비교하며, 문명이 발전할수록 도덕적 타락이 가속화된다고 보았다. 문명은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결국 소멸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본성이 가진 탐욕과 자만심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의 몰락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계기다. 또한 신앙은 인간의 고통과 어두운 본성을 제거하는 힘이 있지만, 종교가 정치와 결합할 때 권력의 도구로 전한다.

혁명은 인간본성 날것으로 드러내

‘죽음 저편의 회상’은 인간본성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샤토브리앙은 권력의 유혹과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절대적 권력이 인간의 가치를 왜곡한다고 보았다.

샤토브리앙의 묘소.

그는 나폴레옹을 야망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권력은 인간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휘두르는 힘이고, 권력 쟁취의 야망이 역사변동의 중심동력이라고 통찰했다. 혁명은 사회혼란과 폭력을 필연적으로 초래하고, 어두운 인간본성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고귀한 이상으로 시작된 혁명은 그 과정에서 권력욕과 복수, 탐욕이 개입되어 이상을 왜곡하는데, 그것이 혁명의 본질이다. 또한 혁명은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인간본성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리하여 혁명에 가담한 세력은 파괴적이고 잔인한 수단과 방법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샤토브리앙은 ‘죽음 저편에서’ 세상을 관조한다. "Comme le souvenir des choses passees est souvent triste, et comme la vie humaine s’evanouit vite! 과거의 기억은 얼마나 종종 슬픈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가!" "J’ai passe ma vie a essayer de donner une forme aux ombres qui remplissent mon esprit. 나는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림자들에게 형태를 부여하려 애쓰며 내 삶을 보냈다."

그리고 샤토브리앙은 부르짖는다. "La Revolution a brise les chaines de l’oppression, mais elle a aussi brise l’ame de ceux qui l’ont vecue. 혁명은 억압의 사슬을 끊었지만,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영혼을 부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