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에서 가장 왼쪽에 있다’는 문형배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헌재)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를 안타까워한 지지자들이 있긴 했지만, 별다른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헌재는 나라의 근본인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고, 재판관들은 어떻게 하면 헌법을 더 잘 지킬까 불철주야하는 분들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권한대행이던 이정미 재판관이 핑크색 헤어롤을 뒷머리에 붙인 채 출근하던 모습은 그런 인식을 증폭시킨 명장면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5년, 많은 국민들은 헌재를 의심한다.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정파적 이익에 매몰된 집단이 아니냐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소위 검수완박법에 대해 국민의힘이 헌재의 심판을 구한 적이 있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이 위장탈당, 회기 쪼개기 등을 동원해 소수의견을 무력화했으니, 그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헌재는 5대 4로 검수완박법이 ‘국민의힘 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법안통과 자체는 유효하다’는 희한한 논리를 펴면서 5대 4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다.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우리법연구회 등에서 활동했던 다섯 명이 모두 ‘기각’에 표를 던진 것. 심지어 이미선을 제외한 4명은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의견을 냈다! 누가 임명했는지에 따라 답이 정해져 있다면, 헌재 재판관에게 전문성은 왜 필요한 것일까?
검수완박법의 해악이 대다수 국민에게 와닿지 않아서인지 그 당시엔 별반 논란이 되진 않았지만, 대통령 탄핵정국이란 민감한 상황에서 헌재의 정치 편향성은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시작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판결이었다. 임기 시작 하루 만에 탄핵안이 발의된 어이없는 상황, 게다가 민주당이 탄핵 이유로 든 ‘2인 체제’는 민주당이 정략적인 이유로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탓이었다. 헌재 재판관 문형배도 이를 지적했다. 국회 측 소추위원으로 나온 정청래에게 ‘국회가 추천 안 해주면 방통위는 일하지 말란 말이냐?’는 문형배의 일갈은 수많은 방송에서 되풀이되며 많은 이에게 청량감을 줬다.
결국 이진숙의 탄핵은 기각됐지만, 사람들은 스코어가 4대 4였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모조리 ‘인용’에 표를 던진 결과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4명 중 한 명이 문형배라는 것, 이는 앞서 검수완박에 대해 ‘과정은 잘못됐지만 법안은 문제없다’고 했던 이미선 판결의 재탕이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문형배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본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파면 팔수록 나오는 것은 괴담이었다. 원래 판사가 SNS를 통해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예컨대 노무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고소된 정진석 전 의원에게 6개월 형을 선고한 박병곤 판사가 노사모스러운 SNS 글을 수도 없이 쓴 이라면, 이 판결에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형배는 그 박병곤보다 더한 내용을 SNS에 쓰고 있었다. ‘우리법연구회에서 내가 가장 왼쪽에 있다’는 게시물만 해도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다음 내용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16개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몰랐을까?’
다들 알다시피 UN 참전용사들은 북한에 의해 짓밟혀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 그런데 UN군이 침략자인 것처럼 묘사된 문형배의 게시물은 6·25가 북침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답습하는 꼴이잖은가? 문형배는 이게 ‘북한군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뜻’이라고 변명했지만, 이는 김진 앵커의 다음 말로 간단히 반박된다. "북한 비판인데 왜 질문은 UN군에게 하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이가 헌법을 수호하는 헌재 재판관을 한다? 이쯤 되면 스스로 물러나거나 강제로 사퇴시키는 게 맞아 보이는데, "이게 대통령 탄핵 심판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는 헌재 공보관의 반박을 들으니 기가 막힌다. 헌재 여러분, 이런 상태에서 탄핵 판결이 난다면, 국민이 승복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권위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치는 데서 오는 것이지, 찍어누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