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세계] 자칼과 테러리스트 그리고 시인

2024-12-26     장석광 범죄학 박사·JK 포렌식 인텔리전스 대표
장석광

비상계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4일 어느 친목 단체 연말 모임, 80대 중반 노신사가 연단에 올랐다. "서른다섯, 한창 젊은 나이였으니 그땐 며칠씩 밤을 새워도 피곤할 줄 몰랐습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저와 같이 일했던 우리 동지들이 저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짐작됩니다. 죄송합니다." 김기춘 변호사였다. 김 변호사와 어떤 직접적 인연도 없는 필자지만 선배들로부터 전해 들은 김 변호사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전날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를 시해한 문세광이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났는데도 입을 열 기미가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1974년 8월 16일 저녁. 중앙정보부장 법률보좌관 김기춘 검사가 수사에 투입됐다. "‘자칼의 날’을 읽었나?" 문세광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되물었다. "선생도 읽었나?" "읽었다. 네가 바로 자칼 아니냐?" "그렇다." "혁명을 하겠다는 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비겁한 것 아니냐?" 문세광이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은 영국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가 1971년에 발표한 첩보소설로, 1973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프랑스 극우 비밀군사조직 OAS가 프랑스령 알제리를 독립시키려는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살인청부업자 ‘자칼’을 고용했다. 제목 ‘자칼의 날’은 자칼의 암살 계획이 실행되는 특정한 날을 의미한다.

자칼은 독신 백인 남성이었다. 스포츠와 외국어에 능통하고 위장에도 능했다.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고, ‘원샷 원킬’ 장거리 저격의 달인이었다. 오직 돈을 위해서만 일했고, 보수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로만 받았다. 한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켰고, 지하세계 사람들과도 공정한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자칼의 이런 특성은 이후 영화·드라마·소설 속 살인청부업자·킬러·테러리스트 캐릭터의 전형이 됐다.

‘자칼의 날’은 픽션을 넘어 실제 테러리스트와 암살자들에게도 영감을 줬다. 냉전 시대 ‘테러리스트 중의 테러리스트’로 악명을 떨쳤던 베네수엘라 출신 테러리스트,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llich Ramirez Sanchez)는 ‘카를로스 더 자칼’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를 암살한 이갈 아미르(Yigal Amir)와 2005년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수류탄을 던진 블라디미르 아루튜냔(Владимир Арутюнян)은 ‘자칼의 날’ 팬으로 알려졌다.

살인청부업자는 철저히 ‘돈’에 움직인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나 혁명가들의 동기 부여는 다소 다르다. 그들은 대개 ‘사회적 인정 욕구’ ‘영웅적 이미지’로 움직인다. 이들의 이런 특성을 잘 알았던 김기춘은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중앙정보부 수사국장이 될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A가 검거됐다. 30대 중반 고졸 출신으로 명문대 출신 백수십 명을 조직원으로 이끌던 시인이었다. "수사기관에 검거되면 너와 네 가족의 배 창자를 칼로 긁어 죽이겠다고 수사관을 협박해라"라고 지시하던 그였으니 쉽게 자백할 리 만무했다. 수사관과 A의 팽팽했던 긴장이 살짝 느슨해진 순간 "명불허전이네, 과연 OOO(A의 필명)답다. O선생의 신념을 존중한다." 40대 중반 수사관이 담배를 권했다. "나를 적장으로 대우해 주시오. 당신들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책임자를 불러주시오."

A가 수사국장을 찾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50대 후반 신사가 조사실로 내려왔다. 실제 수사국장인 B는 모니터로 조사실 상황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낭만의 시대였다. 수사관에게도 테러리스트에게도, 혁명가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