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러 파병 북한, 경무장 보병만 보낸 이유
지난 10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인된 이후, 김정은이 대체 어떤 생각으로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군대를 파병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것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최근 국정원 발표 자료에 의하면 북한군 1만1000명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됐으며 그들 중 일부가 12월 들어 실제 전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최소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도 1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의 작전상황을 보면 얼마나 어설프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에 투입됐는지를 알게 된다.
이들이 작전하는 쿠르스크지역은 러시아 서부에 있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이다. 비록 핵발전소가 있고 가스관이 지나고는 있지만 우선순위 높은 전략 요충지는 아닌 곳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동남부 도네츠크 지역을 러시아가 집중공격하자 이곳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로 하고, 지난 8월 이 지역을 기습 공격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러시아에 충격도 주었고 진격도 순조로워 국경도시를 장악하고 내륙으로 30여㎞를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러시아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공격은 돈좌(頓挫: 기세가 갑자기 꺾임)됐다. 그리고는 러시아의 반격작전이 시작됐는데 바로 이 작전에 북한군이 나타난 것이다. 러시아에 파병하는 것이 확인됐던 10월을 기준으로 불과 한 달 지난 시점의 일이다.
지형과 기상 면에서 이 지역은 대평원지대로 사방이 훤하게 트여있어 은폐 엄폐할 수 있는 지형지물도 흔치 않다. 더군다나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눈이 내리고 지면이 얼어붙기 때문에 기동장비는 물론 사람이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기온도 평균 영하 5도 이하 혹한이어서 철저하게 동계작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전투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악조건의 전장에 최신무기 드론에 대한 적응훈련도 안되고 동절기 물자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어설픈 군대가 투입됐으니 얼마나 전투 손실이 크겠는가. 짧은 시간 전투력 손실 정도가 이미 10%를 넘어선 것을 보면 조만간 북한군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고 전장 이탈 같은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북한군은 러시아군 1개 중대에 1개 소대 규모로 편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는 타국 군대와 함께하는 연합작전의 기본교리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완전 편성된 전투부대가 투입된 것이라면 자체 포병과 같은 전투지원부대와 군수지원을 담당하는 전투근무지원부대가 전투단을 이뤄 함께 작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은 별도의 작전지역을 할당받기 때문에 구태여 말단부대가 언어소통에 애로를 겪는 일은 없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 말단부대의 일부로 구성돼 있다면, 이는 러시아 지휘관 입장에서 북한군을 기만 목적으로 일부러 노출된 지역으로 투입하거나 최전선 정찰과 같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는 것을 방조한 것이다.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북한이 연대나 사단과 같은 완전 편성 부대를 보내지 않은 근본 이유가 외화 수입을 위한 용병 목적임을 알게 해준다. 러시아에 대해 엄청난 전투장비와 탄약을 제공한 북한이 정작 자기들 부대는 엄호물자나 지원 화력 하나 없는 경무장 보병만 보낸 것이다. 그리고 마치 다른 나라에서 온 것처럼 여권을 위장하는 기만도 했다.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질책에 철저하게 국가차원의 파병이 아니라고 고집하며 눈가림하고 있는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주민들까지 용병으로 팔고 있는 김정은 집단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짓을 하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기가 막히는 것은 이런 독재자와 마주앉아 여전히 평화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집단이 이 자유대한민국에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