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무참해진 군의 명령과 지휘체계

2024-12-10     권태오 예비역 육군중장·군사학 박사
권태오

군에서의 명령이라 함은 상급자가 지휘계선 상의 하급자에게 하달하는 지시를 말한다. 이는 문서뿐만 아니라 단순한 말(구두)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명령은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하급자는 항명(명령 불복종)으로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명령은 반드시 지휘계통을 거쳐 하달해야 하고, 그 지휘계통을 우회하거나 무시해서도 안된다. 만일 그럴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즉시 그 사실을 누락된 지휘계통에 보고해야만 한다. 군에서는 이런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엄중히 다루고 있고, 모든 지휘관은 이러한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다.

군의 명령은 법적인 효력이 있기 때문에 군을 움직이는 명령을 발령할 때는 태산(泰山)처럼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명령이다, 따르라’란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만일 중간에 위치한 지휘관이 상급자로부터 하달된 명령을 볼 때, 아무리 봐도 자신의 부대에 부적합한 임무이거나 군이 수행할 임무가 아니거나 크게 봐서 불법적인 명령으로 판단될 때는, 즉시 그 명령을 하달한 상급자에게 재차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만 한다. 자신의 예하부대에 하달하기 전에 조치해야 할 사항이다.

이것은 명령 불복종이나 거부가 아니라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부대를 위해여 해야 할 의무다. 그것이 ‘태어난 날과 시간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수 있다’는 군의 상명하복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그런데 계엄령 사태가 종료된 후 진행되는 여러 가지 일 속에 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명령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지휘계통을 무시하는 일로, 군을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전 특전사령관이 ‘다시 계엄령이 발령되어 명령이 내려온다면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한다는 말이었겠지만, 이런 단서 없이 전달되는 내용은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군 명령의 존엄성과 엄중함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만들고 있다.

또한 아무리 자신들에 대한 원망이 견뎌내기 힘들더라도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 승인받지 않은 상태에서 군 지휘관이 길거리에서 기자회견하는 일까지 벌인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미 국민들은 명령 받고 움직인 군인들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국군 최고의 부대에서 벌어진 이 일을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최소한 우리 국민들은 군을 그런 존재로 알고 있다. 군에서는 매년 자신의 부하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요소를 평가한다. 충성심·국가관·사생관·도덕심 등등 그 측정 요소는 10여 가지가 된다. 직속상관과 그 한 단계 위 차상급 지휘관까지 피평가자를 대상으로 이런 평가를 매년 반복해서 실시한다.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한 경우는 그 성적까지 기록이 되며 심지어는 가족관계, 동료들의 인물평까지 참고한다. 평가를 담당한 상관이 어느 한 쪽에 치우지지 않을 경우, 매년 반복적으로 시행한 이 평가 결과가 누적될 시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 인물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진급대상자가 되면 이 자료를 토대로 심사를 해서 진급 여부를 결정해 오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진보, 보수 정부가 자주 교체되고 그럴 때마다 이런 객관적 자료는 뒤로 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선발하고 요직에 앉혔다. 결국 정치적 중립이어야 한다는 군을 대단한 정치적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학연·지연·인연 등 배제돼야 할 요소가 오히려 선발의 기준으로 활용됐다. 능력 없는 자로 평가되던 자가 갑자기 중용되고 자신을 따르는 인물들을 요직에 배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인들이 망가뜨린 군 인사 시스템이 언제나 복원될 수 있을지 참으로 기대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