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상속세 부결"...말 바꾼 이재명, 나라 망친다

2024-12-02     조남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신정훈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2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날 오전 예고한 대로 내년도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감액 예산 논란은 일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와 함께 예산안에 따른 부수 법안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상속세법·증여세법 개정안 처리도 미뤄지게 되었다. 다만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거라는 우려 또한 그대로 남게 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소득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최고 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를 현재의 10배 수준인 5억 원으로 대폭 올리는 내용이다. 또 기업 승계 시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상속할 경우 평가액에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20%를 더하는 할증 과세를 폐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업의 경영 승계 시 경영권이 위협받는 폐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초부자 감세"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민 개개인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세금 폭거를 즉각 중단하고 중산층 감세를 위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개정 처리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증여세는 우리 국민 모든 가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차대한 세제로서 명색이 제1야당 대표가 불과 4개월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꿀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이른바 ‘민생 행보’의 맥락에서 상속세에 유연한 입장을 밝힌 이후 갑자기 입장을 돌변한 것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선 안 된다’, ‘남편이 사망해서 부인이 집 한 채를 상속받으면 상속세 수억 원이 나와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생긴다’라며 상속세 일괄공제와 배우자 공제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표의 ‘먹사니즘’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중산층을 위협하는 고율의 상속세제를 그냥 두고 어떻게 ‘민생’을 입에 올리냐는 것이다. 이 대표의 민생 행보는 보여주기일 뿐 그의 진심은 대권 후보로서의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여론전으로 사법 리스크를 모면해 보려는 속셈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상속세율 하향 조정은 중산층에게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기업 경영에는 더욱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후진적 세제를 고집하면 국가 경제가 타격을 입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고 비판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비춰볼 때 한국의 상속세는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걸 그대로 두면 누가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돈을 굴리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재계도 상속세율 인하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 11월 24일 상속세 완화가 장기적으로 국민소득과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상속세의 경제효과에 대한 실증분석’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상속세수 10% 감소 시 장기적으로 1인당 GDP가 0.6% 증가한다. 또 상속세수 10% 감소 시, 장기적으로 증시 시가총액아 6.4% 증가한다. 따라서 사전 부과 세금인 상속세를 사후 이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행 상속세제는 20년이 넘도록 개정되지 않아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 승계 과정에서 최대 주주에 부과되는 할증세율로 인해 상속세율이 60%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과도한 세율로 기업 경영권이 위협받는 현실에 대해 "이대로 가면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다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본부장은 그 대표적인 예로 스웨덴 유명 제약기업 아스트라 사례를 들었다. 아스트라는 창업주 사망으로 상속인이 실질 상속 재산을 초과하는 세액을 납부할 의무를 지게 되어 결국 이 기업은 영국 제약업체인 제네카에 인수되었다. 이 사건은 스웨덴 부유층의 이민을 촉발하였으며, 스웨덴은 결국 2004년 상속세를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