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유죄는 짐승정치의 당연한 귀결
11월 16일 오후, 그러니까 공직선거법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지 만 하루가 더 지난 시각, 이재명은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윤 대통령 규탄 장외집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정부패를 없애고, 불의한 자에 책임을 묻고, 공정한 세상과 우리 자식들도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다."
아무리 지지자 앞이라도 그렇지, 부정부패를 삶과 일체화시킨 분이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보통 얼굴 두께로는 가능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다.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제발 나 버리지 말아주세요, 흑흑’인 셈인데,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재선의원에 하마터면 대통령까지 될 뻔한 이가 어쩌다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됐을까? 그의 ‘꼬봉’ 박찬대가 말한 것처럼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이라고 정리하면 지지자들은 설득시킬 수 있겠지만, 이게 사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재명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정치인생을 조용히 돌아보는 것이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이재명이 상대적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주된 이유는 자기 측근 김인섭이 로비 대가로 77억을 챙기게 해준, 백현동 아파트 부지의 용도 변경과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였다. 국감장에서 미리 준비한 패널을 읽으면서 ‘국토부가 협박했다’고 주장하던 이재명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많은 법률가들은 백현동 건과 더불어 양형을 높이는 요소가 됐던 것은 고 김문기가 딸에게 보낸 영상이라고 말한다. "오늘 시장님하고 본부장님하고 골프까지 쳤다. 오늘 너무 재밌었고 좋은 시간이었어"라는 9초짜리 영상, 여기엔 김씨가 이재명과 같이 골프를 친 것에 가슴 벅차하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재명은 그와 함께했던 대장동 사업의 추악한 비리가 드러나자 김씨를 외면한다. 김문기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아무런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회사 일로 조사받는 저에게 어떠한 관심이나 법률 지원이 없어 원망스럽다." 그 뒤 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남시장을 그만둔 뒤였긴 해도,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 자랑했던 대장동 사업의 책임자였던 이가 그와 관련된 일로 조사받다 변을 당했다면 뒤늦게라도 미안함을 표시하는 게 윗사람의 도리. 그런데 이재명은 방송에서 "하위직이라 김문기를 모른다"고 네 차례나 반복해 말했다.
이게 문제되자 ‘시장 시절에는 몰랐다’는 말이었다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그 말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최소한 빈소에 찾아갔어야 했다. 이재명이 그로부터 보름 후 있었던 평택 물류창고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의 빈소를 찾아간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는 김문기 씨에게 전 직장 상사의 예를 다하는 게 표에 도움이 안 됐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재명의 행태에 김씨 유족들은 분노했고, 대선 직전 기자회견을 열어 위에서 언급한 영상과 더불어 호주·뉴질랜드 출장 당시 고인이 이재명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이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검찰 측 증거로 고스란히 쓰였다.
그가 김문기 씨에게만 이런 건 아니다. 이재명이 출마할 때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씨의 선거를 도왔던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 그런 그가 대장동 비리의 한 축이라는 게 드러나자 이재명은 그와의 관계를 부정한다. 측근이 아니라는 것. 민주당 경선토론에서 이재명은 "그 사람이 제 선거를 도와줬냐. 그런 것을 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구라를 치면서까지 측근임을 부정했다. 유씨가 구속된 뒤 대선후보를 사퇴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한국전력 직원이 뇌물 받으면 대통령이 사퇴하느냐"며 선을 그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유동규에 따르면 감옥에 갇힌 그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닌, 감시할 목적으로 변호사를 보내기까지 했단다. 결국 유동규는 공선법 재판에서 호주·뉴질랜드 출장 당시 골프를 치고 바다낚시를 같이 했다는 것을 비롯해 이씨에게 치명상이 될 증언들을 쏟아냈고, 이것 역시 유죄판결에 한 축을 담당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이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용가치가 없다면 바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자신은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이재명을 보면서, 이런 덕담을 던져본다. 이재명씨, 정치인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세요. 님이 지금 하는 건 인간을 위한 정치가 아닌, 짐승정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