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선 '환호' 다른 쪽은 '침울'...韓 투자자 '트럼프 랠리'에 희비
직장인 이모씨(26·여)는 요즘 ‘룰루랄라’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길 것으로 보고 테슬라 주식과 비트코인을 선거 직전 크게 늘린 덕분이다. 테슬라 주가는 선거 이후 35% 가까이 급등했고 비트코인은 최근 한때 9만달러(약 1억2600만원)도 돌파했다. 미실현 수익이긴 하지만 며칠만에 2000만가량의 이익을 본 이씨는 "빚을 내서라도 더 투자 못한게
아쉽다"면서도 싱글벙글이다. 하지만 같은 대학 투자동아리 친구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베팅했던 김모씨(25)는 입맛이 쓰다.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본 태양광 등 친환경주에 몰빵했다가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씨는 ‘국장’으로 불리는 한국 증시에 투자한 이들에 비해 행복한 편이다. 달러 자산을 보유한 덕에 달러 강세(원화는 약세)로 상당한 환차익을 봤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가 꼬꾸라질 일은 없다"는 믿음으로 심상전자가 7~8만원대로 밀렸을 때 거액을 투자한 또다른 직장인 김모씨(48)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멘붕’상태다.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4만 전자’가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에 잠까지 설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수혜주의 급등을 가리키는 ‘트럼프 랠리’에 동참한 사람과 그에 소외된 사람 간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다우와 나스닥 등 미국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할 뿐아니라 비트코인 등 트럼프 수혜주는 뛰는 것을 넘어 날고 있다. 하지만 한국 증시만 나홀로 하락이다. 이번 주 들어 사흘간 코스피지수는 144.7포인트(5.6%), 코스닥지수는 53.75포인트(7.2%) 급락했다. 한마디로 연일 새파랗게 질리고 있다.
동학개미와 서학개미간에 희비가 엇갈린다는 얘기는 옛날 버전이다. 최근에는 친구와 동료 간은 물론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간에도 한·미 증시 투자가 가른 명암이 극명하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MZ세대들은 일찍부터 ‘국장 탈출’을 해왔다. 트럼프 랠리의 수혜를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대부분 미국 주요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는 등으로 달러화 자산을 보유해 이번 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상당수 중장년은 환율이나 국제 금리 움직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 한국 증시에 자산을 묻어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한 가정에서도 자녀는 싱글벙글하는 반면 부모는 침울한 ‘기묘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 증시 투자자 중에는 정부에 분노를 터뜨리는 이도 적지 않다. 유독 한국 증시만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등 말만 번지르하게 했을 뿐 실질적인 제도 개혁을 도외시한 정부도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 유독 한국 증시가 외풍에 이렇게 약한 데는 주주 존중과 기업투명성을 요구하는 국내외 시장참여자의 요구를 못들은 체한 금융 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은 물론 한국인들의 ‘증시 이민’이 이렇게 심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참 답답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