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김정은-푸틴, 소경이 소경 손을 이끌고 구렁텅이로

2024-10-30     전경우 작가·저널리즘 박사
전경우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공녀를 보내야 했다. 고려 원종 15년(1274)에 원이 고려에 공녀 140명을 보내라고 한 것이 시초였다. 고려는 몽골 오랑캐에 항거하다 진압당한 삼별초의 아내나 딸, 승려나 죄수의 딸들을 붙잡아 강제로 원에 보냈다.

원의 공녀 요구는 집요하고 거칠었다. 고려가 원에 항복한 이후 80여 년간 50여 차례에 걸쳐 공녀를 바쳤다.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고려 조정은 과부처녀추고별감이라는 관청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공녀를 선발해 갖다 바쳤다.

딸을 낳으면 숨기고 어린 아이들을 혼인시키는 조혼 풍습도 생겨났다. 데릴사위라는 게 이때 나왔다. 공녀로 뽑히게 되면 도망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온 나라가 공녀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공녀로 인해 나라에 처녀가 귀해지자 총각들은 장가 들기가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축첩을 허용해 딸을 더 많이 낳도록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대학자 목은 이색의 아버지로,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고 돌아온 이곡이 참다못해 원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공녀로 뽑히면 부모와 친척들이 서로 한곳에 모여 곡을 하는데, 밤낮으로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비통하고 원통하여 울부짖다가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심 걱정으로 기절하는 사람도 있고 피눈물을 흘리며 눈이 멀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북한이 러시아 전쟁터로 인민군을 보냈다.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가족들을 따로 분리 통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문도 문제지만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놓으려는 속셈이다. 고려 때 공녀로 딸자식을 보내면서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이 떠오른다.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통일 아니면 전쟁이라도 터지라고 소원한다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을 것이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사지로 끌려가는 군인들도 안타깝지만, 그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평생 나라 밖 구경 한번 못해 보다가 겨우 해외라고 나간 것이 전쟁터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여준다더니, 제 땅에서는 그 소원 이뤄보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투항하고 포로 신세가 되면 고기반찬에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얻어먹을 수 있게 됐다.

서방 언론에서는 러시아로 내몰린 군인들이 10대나 20대 초반의 어린 병사들로 보인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니까. 인민군들은 나이가 들어도 대부분 키가 작다.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다.

러시아로 끌려간 인민군은 용병이다. 용병(傭兵)이란 보수를 받고 전투를 하는 행위나 사람을 말한다. 러시아에서 병사를 산 것이다. 급여 주고 근로자를 데려다 일 시키듯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니 용병이 맞다.

용병 하면 스위스다. 산악지대라 농사 짓기도 힘들고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스위스 사람들은 스스로 용병이 되어 해외에 나가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가족들 먹여 살렸다. 자신이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자부심도 대단했고 책임감도 컸다. 항복도 타협도 없었다.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싸웠다. 스위스 용병이 최고라는 찬사가 그렇게 나왔다.

용병으로 끌려간 인민군은 자원도 아니고 전쟁터에 흘린 피와 목숨값이 가족을 위해 쓰이지도 않는다. 독재자 김정은의 입으로 다 들어간다. 잔인한 독재자의 배가 불러갈수록 죄 없는 인민들의 고통만 커질 뿐이다.

푸틴과 김정은, 두 독재자의 기이한 브로맨스는 자신들조차 상상하기 힘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드시 자멸, 공멸할 것이다.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소경이 소경의 손을 이끌고 함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