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북한군 러 파병이 몰고올 한반도의 파장

2024-10-29     권태오 예비역 육군중장·군사학 박사
권태오

우리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격전지인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지역에 이미 북한군 약 1만1000여 명이 집결한 것을 파악했다고 한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처음 포착된 것은 지난 8일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엿새에 걸쳐 러시아 수송함을 이용해 북한군 1만2000여 명이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포착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보급품을 받고 최소한의 적응훈련을 마친 다음 불과 보름 만에 최전방 서부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전쟁 중인 다른 나라로 파병한다는 것은 상당한 협력관계가 바탕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다지 가까운 관계로 보이지 않던 북·러 관계가 갑자기 밀착되기 시작한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절박함이 빚어낸 일이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개전 이후 지난 달까지 총 7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탱크 9090대, 항공기 369대, 군함 28대, 드론 등 무인기 1만7597대 등 전쟁 이전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병력의 77%, 항공기의 27%를 소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전쟁지속능력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가 병행되고 있어 그야말로 푸틴 입장에서는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프간·네팔 등에서 획득한 용병을 투입하고도 있지만 적은 규모의 증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줄곧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해 달라고 졸라대고 있던 북한에게 눈길이 돌려졌고 마침내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거래를 한 것이다.

당장 러시아로서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재래식 무기와 탄약이 필요했고, 북한으로서는 계속 실패하는 군사정찰 위성과 대륙간탄도탄 재진입 기술, 핵추진 잠수함 개발 기술 같은 첨단 군사기술의 이전이 필요했다. 그런 일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 지난 해 9월 13일 러시아 동부지역 아무르주 브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김정은-푸틴 두 정상 간의 회담이었다.

그 자리에서 푸틴은 러시아 현지방송을 통해 김정은과 인공위성 개발지원을 비롯해 군사, 기술협력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독재자 간의 거래가 지금 전 세계가 우려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파병은 한 번 시작되면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종전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군의 참전규모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한군 전체의 전투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며 북한과 러시아의 끊어지지 않는 동맹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상당한 희생자가 나오겠지만, 전사자들을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제국주의자들과의 교전에서 희생된 영웅들이라고 선전하며, 북한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1인 기준 수당으로 받는 월 2000달러는 대부분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사용되겠지만, 그래도 일부는 주민 생활 개선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참전자들의 서구문화 접촉 흔적은 아무리 단속하고 없애려고 해도 북한 사회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 것이며, 결국 북한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단속하기 위해 미리부터 참전자들의 가족을 다른 곳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하지만 결국 마른 손으로 모래알 쥐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운명을 결정지을 커다란 도박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한 북한의 결정은 분명 한반도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당장 남북간 군사적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겼다. 이 허점을 가리기 위해 수세로 전환한 북한의 수사적 위협 등 간조기(干潮期) 전술이 구사될 것이다. 속아 넘어가지 않는 지혜와 함께 향후 전쟁 경험을 가진 적을 상대해야 할 우리 국군의 전투력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파병을 통하지 않고 전쟁 경험을 얻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