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남다른 시선] 레바논, 강도의 라이플과 사모님의 권총

2024-10-15     남정욱 작가·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지난 5일 레바논 현지 교민 97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대사관 직원10여 명과 개인 의지로 레바논 잔류를 선택한 선교사 등 38명이 현지에 남아 있다고 한다. 잔류 선택이라. 전쟁터에 스스로 남아있겠다는 이 놀라운 발상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주레바논 한국대사관은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밀집지역에서 불과 5킬로미터 떨어져있다. 헤즈볼라 주요 은닉 시설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어디가 안전한지 어디로 피신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당연히 이스라엘의 폭격에 대비할 수도 없으며 운 나쁘면 오폭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레바논 사태는 임박한 이스라엘-헤즈볼라 전면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톨릭과 이슬람 그리고 그리스정교까지 종교가 제각각인데다 같은 종교 안에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고 게다가 친시리아, 친이란 세력과 친사우디 세력이 대립하고 있어 내전도 없으란 법이 없다. 외부에서 날아오는 미사일과 내부에서 발사되는 총탄이라는 이중의 위협이 기다리는 것이다.

어쩌면 더 겁나는 게 내전이다. 내전이라고 하면 자기들끼리만 싸우는 줄 알지만 내전의 특징은 전쟁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전쟁터와 비(非)전쟁터의 경계가 사라지고 총탄은 어디서든 날아들 수 있다. 교회, 학교, 식당, 카페 어디서든 폭탄이 터지고 남성과 여성의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아이를 피해 총을 쏘는 전사(戰士)도 없고 노인만 외면하는 총탄도 없다.

그리고 뭐든 한 번 해 본 것은 다시 하기 쉽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 내전이 벌어졌다. 이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례 몇 개를 들면 외전에 내전이 겹쳤을 때 그 땅에 남아 있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수도인 베이루트 중심가에 고급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일반인은 아예 이용할 꿈도 못 꾸고 상류층만 출입하는 곳으로 파리에서 당일 수송된 신선한 푸아그라와 캐비아 등을 판다. 어느 날 청년 하나가 가게에 들어와 라이플을 꺼내들었다. 캐시박스에 담긴 현금을 모두 내놓으라는 청년의 협박이 채 끝나기도 전 근처에 있던 ‘사모님’ 세 분이 에르메스 백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주저하지 않고 청년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시원하게 총질을 마친 사모님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쇼핑 카트를 끌고 진열대로 달려갔다. 매장 직원이 정리를 하는 동안 바닥에서는 청년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베이루트 공항근처에 서머랜드라는 호텔이 있다. 5성급 최고급 호텔인데 현관에 들어서면 연미복을 입은 도어맨이 고객을 반긴다. 그의 뒷주머니에는 리볼버 권총이 꽂혀 있다. 이 호텔은 군대나 경찰 같은 공권력에 안전을 위탁하지 않는다. 자체 민병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소대 규모의 습격 정도는 껌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총격전에서 이 호텔 민병대가 테러리스트를 격파한 기록도 있다. 이런 게 내전이다.

그리고 내전은 외전보다 훨씬 잔인하고 모질다. 1981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격 침공한다. 외적이 쳐들어왔는데도 내부 적대 세력은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을 포위한 상태에서 드루즈파와 기독교 민병대가 전투용 도끼와 바주카포를 들고 서로를 죽였는데, 양측 모두 이스라엘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여인들은 쇼핑 봉투와 장바구니를 들고 총알 사이를 뛰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오늘 가족들과 먹을 저녁 식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내전이란 게 이렇다.

선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살아 있은 다음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대사관 직원들의 희생을 동반할 수 있다. 하나님도 생명의 무의미한 소멸을 원치 않으신다. 모쪼록 그냥 돌아왔으면 좋겠다. 또 가면 되잖아요.